서울시가 내년 ‘노동존중특별시’의 상징 사업이었던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예산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취약노동계층 권익개선 사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센터·시민단체 관계자들이 5차례에 걸쳐 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갖는 의미를 되짚고 향후 과제를 제시한다.<편집자>
 

이진영 강서양천청소년노동인권활동가모임 다움 활동가
▲ 이진영 강서양천청소년노동인권활동가모임 다움 활동가

지금은 성인이 된 큰아이가 고교 2학년 내내 주말 예식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예식장에 딸린 뷔페식당 서빙 아르바이트였다. 청소년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아르바이트생들은 검은 바지에 흰 긴팔 셔츠를 입어야 하는 복장규정이 있었다. 큰아이는 한여름에도 긴팔 셔츠를 입어야 하니 땀을 흡수할 수 있도록 면 티셔츠를 안에다 챙겨 입었다. 어느 여름 주말, 일을 마치고 온 큰아이가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옷을 벗는데 셔츠 안에 입은 검은색 반팔 면 티셔츠 등판에 하얀 ‘소금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땀이 났다가 마르기를 반복해서 생긴 얼룩이었다. 안쓰럽고 속상한 마음을 누르고 건조하게 물었다. “오늘 많이 더웠니?” 그런데 대답은 의외였다. 손님이 다 나가고 뒷정리를 하는데 예식장측에서 에어컨을 꺼 땀이 많이 났다는 거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청소년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데 에어컨을 끄다니. 최저임금(그나마 소개 수수료를 떼고 받았다)을 받고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에어컨 바람마저 아까웠을까. 솔직히 청소년 노동자를 대하는 이런 태도가 비단 그 예식장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역에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활동을 하면서 청소년 노동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청소년 노동인권 캠페인을 펼치거나 조사연구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주요하게는 지역의 중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한다. 2019년부터는 서울시교육청이 특성화고 연 2회 노동인권교육을 의무화하면서 학교로 찾아가는 노동인권교육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교과과정에 없는 노동인권 교육에 모든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야기에 집중하다가 질의응답에 의욕적인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교복 입은 청소년 노동자일 확률이 높다.

교실에 청소년 노동자들이 있다. 노동현장의 사례나 알고 있는 관련 지식을 말하며 교육에 도움을 주거나, 딱히 어디 물을 곳이 없어 구제받기 어려웠던 일에 관해 질문을 한다. 자세한 노동상담이 필요한 경우는 학교가 위치한 자치구 노동센터 전담 노무사와 연결해 주기도 한다. 학교로 찾아가는 노동인권 교육이 늘어나면서 교실에서 청소년 노동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 역시 증가하고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의 노동센터는 청소년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직접 관내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안내하고 교육으로 연결될 수 있게 했다. 또 청소년 당사자들이 서로의 노동인권을 지키는 ‘또래 상담사’ 사업을 기획하고, ‘노동포럼’ 등 지역 노동이슈를 다루는 공론의 자리에 청소년 노동 꼭지를 놓치지 않고 넣었다. 지역 노동센터가 청소년 노동사업을 위해 지역의 다양한 자원들과 거버넌스를 구성해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서, 청소년 노동에 관한 일은 지역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기획되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 지역의 청소년 노동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있고, 어떤 업종에서, 어떤 노동환경에 처해있는지 실태파악 조차 돼 있지 않다. 큰아이가 그랬듯 청소년 노동자들은 예식장·배달·편의점·주유소 같은 곳에서 단순 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경향이 많다. 청소년 노동자에 대한 ‘청소년=학생’이라는 사회적인 인식과 맞물려 스스로를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서 질문을 받다 보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비청소년 고용주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거나 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도록 지원하는 체계 역시 부족하다. 그나마 2012년께부터 서울시 정책으로 운영하게 된 자치구 노동센터들에서 지역의 청소년 노동자,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지원과 사업을 펼치고 있어 큰 힘이 됐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노동정책이나 법률이 청소년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거나 보호하는 역할을 유예하고 있는 사이 지역에서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치구 노동센터의 존재는 그 자체로 다행이고 고맙다.

청소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일에 자치구 노동센터가 지금보다 더욱 앞장서고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하길 바란다. 그 와중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자치구 노동센터 예산 삭감을 예고했다. 청소년 노동자를 포함해 일하는 서울 시민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인권을 증진하는 일이 오세훈 시장의 정치적인 고집과 민간위탁제도에 관한 몰이해로 가로막히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천만 서울시민이 일하며 살아가는 문제는 정치인 개인의 입장에 따라 좌지우지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