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극한 대립은 피했지만 불씨는 남았다. 2일 파업을 예고했던 국가보훈처노조는 최근 국가보훈처가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쟁의행위를 잠정 연기하고 다시 협상을 하기로 했다. 노조는 사측이 비현실적인 요구를 또다시 내밀면 언제든 쟁의행위를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보훈처노조는 상이용사 같은 국가유공자를 직접 찾아가 보살피는 보훈섬김이들이 주도해 만든 노조다. 공무직인 이들은 성희롱, 인권침해, 과도한 노동, 열악한 처우 같은 문제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지난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노조사무실에서 한진미(53·사진)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임금 요구 거부하고 교통비 현실화도 묵살”

- 파업을 유보했다. 어떤 상황이 있었나.
“2일을 ‘디데이’로 정했는데 국가보훈처에서 대화를 요청했다. 우리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사후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 쟁점은 뭐였나.
“교통비다. 그 외 다양한 요구를 임금교섭을 통해 전달했지만 단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사업경비로 볼 수 있는 교통비 현실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예산 증액을 한 푼도 하지 못했다며 묵살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태도다.”

- 교통비는 보훈섬김이의 업무상 이동 비용일 텐데.
“그렇다. 보훈섬김이는 하루 서비스 대상자 세 가구를 방문한다. 서비스 대상자가 대중교통이 활성화한 도심에 사는 사례는 드물다. 경기도 북부를 비롯해 중소도시, 그곳에서도 외곽에 머문다. 안타깝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애당초 중위소득 이하가 사업 대상이다. 그래서 지역 대중교통이 열악하다. 하루 세 가구를 방문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자차를 활용한다. 이 유지비용, 전체는 아니어도 적어도 이동거리에 따른 교통비라도 현실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보훈섬김이 71.9% “자차로 사업 수행”

지난달 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대중교통으로 서비스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답한 보훈섬김이는 54%다. 응답자 가운데 64.5%는 자가용을 이용한다고 밝혔고, 대중교통과 자차를 병행한다는 응답도 7.5%로 나타났다. 대중교통만으로 일을 한다는 응답은 28.1%에 그쳤다.

- 현행 교통비는 어떻게 책정되나. 요구사항은 뭔가.
“하루 이동거리 기준 30킬로미터 미만은 일당 4천500원을 받는다. 30킬로미터를 초과하면 1천원이 가산되고, 40~50킬로미터는 3천500원을 더 준다. 이렇게 구간에 따라 나뉜다. 왜 4천500원인지도 모르겠다. 우선 기준이 되는 4천500원을 7천원으로 상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꼭 자차를 이용해야 하나.
“불가피하다. 장거리 이동 같은 문제에 앞서 대중교통이 잘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다. 자차로 20분 이동할 곳을 대중교통으로 가면 한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대중교통은 배차 간격이 커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하루 세 가구는 방문해 돌봄서비스를 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맞추려면 자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돌봄물품 같은 것을 구비하고 다녀야 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것도 쉽지 않다. 오죽하면 사업 초기 국가보훈처가 채용 때 자차 보유 여부를 물었겠나. 그런데 지금은 자차를 이용하지 말라며 징계규정을 넣었다.”

- 징계는 뭔가.
“사고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거다. 보훈섬김이는 규정상 그러면 안 되지만 불가피하게 서비스 대상자를 병원으로 이동하거나 자잘한 심부름을 할 때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수없이 요구했는데 받아들이지는 않고 자차로 이런 일을 하면 징계를 내린다. 현실적으로 자차 이용에 따른 비용이나 사고부담을 회피하려는 의도다. 실제 사고를 당해 보험처리를 하고 징계를 받은 사례도 있다.”

- 한 번 더 대화를 시도하게 됐는데.
“지난달 15일 전자투표 방식으로 찬반투표를 한 결과 투표율 97.15%, 찬성률 96.4%로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투표를 진행하는 도중 국가보훈처에서 연락을 받았다. 고민 끝에 우선 대화를 해 보기로 했다. 만약 이번에도 말도 안 되는 태도를 고수한다면 이미 파업권을 확보한 만큼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이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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