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메이션 <태일이> 시사회가 열린 지난 11일 용산 CGV에서 전태일 열사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장동윤씨가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자신은 굶으면서도 동생 또래의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다 주는 재단사 보조 오빠. 동료 미싱사 영미가 먼지를 마시며 일하다 폐병으로 쓰러지자 둘러업고 뛰는 동료. 봉제공장 사장 처제가 따스하게 대해 주는 모습에 쭈뼛거리며 관심을 보이는 스물두 살 청년.

두 번째 ‘전태일’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탄생
미싱사 업고 뛰고 이성에 호감 ‘인간 전태일’ 초점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51년 만에 그의 삶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태어났다. 지난 11일 용산 CGV에서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태일이>에서 그려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을 불살랐던 ‘열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동생을 살갑게 챙겨 주며 엄마와 수다를 떠는 것을 좋아하고, 이성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동네 청년’의 일상이 담겼다.

<태일이>는 1995년 개봉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후 두 번째로 전태일의 삶을 다룬 영화다. 애초 지난해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된 뒤 관객을 만난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만큼 장면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그려졌다. 공장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모습과 한여름 더위 속에 일하는 여공들이 흘리는 굵은 땀방울 등이 세밀하게 묘사됐다.

<태일이>를 연출한 홍준표 감독은 ‘인간 전태일’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이날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홍 감독은 “전태일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다뤄야 하는데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세대로서 상당한 부담이 있었다”며 “시나리오를 받고 전태일을 알아보니 단지 열사의 이미지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시각으로 20대 초반 동료의 ‘태일이’로서의 얘기에 초점을 맞춰 제 세대가 말해 주면 다음 세대에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애니메이션에서 전태일의 일상이 강조된 반면, 상징과도 같은 ‘분신 장면’은 부각되지 않았다. 동료들과 어울려서 일상을 보내는 부분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마지막 분신 장면은 짧게 처리하고 그 부분을 강조하진 않았다는 게 홍 감독의 설명이다.

홍준표 감독 “나도 노동자, 지금도 현실은 비슷해”
심재명 대표 “청년 전태일 삶 다시 생각하게 돼”

홍 감독은 지금도 <태일이>는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오늘의 전태일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냐’는 <매일노동뉴스> 기자의 질문에 홍 감독은 “저도 영화를 만드는 방송인에 앞서 노동자다. 지금 세대도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며 “많은 부분이 개선되고 다양한 방안이 마련됐지만,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맥락상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전태일의 목소리를 연기한 장동윤 배우도 이날 시사회를 통해 처음 영화를 관람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태일이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레이션 뒤 목사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와닿았다”며 “흔히 떠올리는 업적이나 위인적인 부분을 집중하기보다 인간 전태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린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전태일 열사가 살아계셨다면 73세 노인인데, 이 영화를 봤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궁금하다”며 “청년 전태일의 삶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 <태일이>는 12월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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