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해유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사무장

지난해 6월26일 평소와 다름없이 야간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 준비를 하는데 벽에 뜬금없는 공고문이 하나 붙는다. “한국게이츠는 당일부로 한국 내 제조시설 폐쇄 및 철수한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회사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자동차 시장 내 사업 효율성 검토에 따라 진행되는 전 세계 계열사 사업구조조정으로, 코로나19 때문에 일정이 당겨졌다고 했다. 하지만 폐업하는 순간까지 수십억원의 흑자를 내고, 투자 대비 30배가 넘는 수익을 가져가는 주주들이 댈 만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500일 넘게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조합원들은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안 해 본 것이 없다. 미국자본이 들어오면서 면세혜택도 주고, 대구시도 따로 지원하고, 달성군도 없는 돈 모아 지원해 줬다. 그러나 철수할 때는 뱉어 내는 것도 없고 준 것 다 챙겨 갔다. 막을 방법도, 막는 사람도 없었다. 청와대도 가 보고, 더불어민주당도 가 봤다. 흑자폐업이 억울하다는 게 죄라며 조합원에게 손해배상과 부동산 가압류를 날린 법원도 가 봤다. 폐업 후 한국공장 생산품을 중국공장 생산품으로 대체 납품하는 것을 현대자동차가 허락했다기에 현대자동차그룹도 찾아갔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선전이 투기자본이 먹튀를 하기 좋은 도시였냐며 따지려고 대구시청도 찾아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어디도 단 한 번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곳이 없었다. 노동자라서 억울한 그런 상황이었다.

한국게이츠지회가 끝나지 않는 해고싸움을 하는 동안 게이츠자본은 뒤에서 공장과 그 부지를 팔아먹고 도망갈 준비를 했다. 청산인으로 온 사람은 이미 대한민국을 떠났다. 수많은 이슈를 만들어 왔고,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남아있고 또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은 공장을 얼마나 헐값에 내놓았으면 대성산업이 덥석 받았을까. 조합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성산업으로 간다. 거기서 대성산업의 어느 고위 임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안 가져가려 하니까 우리가 받았지, 우리는 공장을 돌릴 생각이 없고, 매입을 해도 일단 가만히 놔둘 생각이다. 우리는 그냥 공장을 샀을 뿐인데 우리가 왜 고용승계를 해야 하나.” 그럼 그 공장과 부지를 매입하고 가만히 놔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헐값에 매입한 후 1년 뒤에 제값 받고 차익을 남기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도리는 전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거기다가 막말까지 쏟는다. “○○자동차도 노조 때문에 망했다. 너희도 돈 때문에 이러는 것 아니냐. 돈 많이 달라 그랬다며?” 기업의 고위 간부라는 위치에 앉아 있는 자의 마인드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발언이다.

주식회사 게이츠의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피땀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본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악질자본이다. 이들은 한국게이츠 사태를 일으키고도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이번에는 천안에 위치한 어느 자동차공조장치를 생산하는 회사라고 한다. 미래자동차산업으로 전환되는 이 시기에 한동안 이익을 빨아먹을 수 있겠다는 판단 아래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들이 제2의 한국게이츠가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이대로 놔두면 제3·제4의 한국게이츠가 줄줄이 생겨날 수 있다. 악질 외국투기자본 사모펀드가 대한민국에 들어올 때는 온갖 혜택을 다 받고 들어와 노동자의 등에 빨대를 꽂고 착취하는 일을 이제는 규제해야 한다. 그리고 법과 제도 안에서 노동자도 미래자동차 산업전환의 주체가 돼,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로운 산업전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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