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남 여수의 특성화고교생 고 홍정운군 사망 한 달여가 지났다. 홍군은 요트업체 현장실습생으로 투입돼 물속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조개와 따개비 등을 긁어내는 작업을 하다 숨졌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홍군이 잠수작업에 투입되는 것은 불법이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요트업체가 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현장실습 운영절차 준수와 현장실습 참여기업에 대한 지도·점검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2014년에도 울산에서 현장실습생 김대환군이 폭설로 무너진 공장지붕에 깔려 사망했고, 2017년 제주도에서는 이민호군이 현장실습 도중 프레스에 눌려 숨졌다.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청소년 노동기본권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온다. 윤미향(57·사진) 무소속 의원은 학교노동인권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학교노동인권교육법)을 발의했다. 노동인권교육 의무화와 교과과정을 담는 내용이 뼈대다.

윤 의원은 “학교노동인권교육법 제정을 가장 중요한 활동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5일 오전 윤미향 의원실에서 그를 만났다.

“선생님조차 노동교육 못받은 현실,
일부 법개정만으론 문제해결 못해”

- 학교노동인권교육법안 핵심은 뭔가.
“노동인권교육이라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지자체 조례에 따라 전문강사가 학교로 찾아가는 교육 형식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정규교육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외적일 뿐, 체계적인 노동교육으로 연계되지 못한다. 노동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조차도 노동교육을 받아 본 경험이 없다. 노동권을 가르쳐야 한다고는 말하지만 어떤 내용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를 모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만드는 법이다. 예산이 투여되고, 예산이 투여되면 노동권 교육 교재나 선생님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일부 개정안으로는 안 되겠구나, 법을 제정해 구조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윤 의원 말처럼, 현재 17개 시·도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한 조례가 있지만 체계화돼 있지 않다. 노동인권교육 대상과 의무 실시 시간까지 정한 곳은 서울·경기·인천·광주·부산·충북 교육청이고, 구체적인 내용과 방식은 조례마다 다르다. 서울시교육청은 직업계고·일반고 중 직업위탁반 운영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학기당 2시간 이상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중·고등학교에서 연간 2시간 이상, 광주시교육청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고 있다. 교육 방법도 규정되지 않아 담당교사가 외부강사를 초빙해 수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교사 재량에 따라 교육 질이 좌우되는 상황이다.

- 법안을 시행하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특성화고 학생들의 반복되는 죽음이 줄어들 것이다. 교육의 힘은 재발 방지다. 청소년 노동자, 청년노동자가 자신의 권리조차 모르는 상태로 노동 현장에 내몰리는 상황이 사라질 것이다. 사용자와 기업들이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지 않았을 때 받는 처벌을 명확히 알게 해 재발방지에 중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노동을 아래로 보는 우리 인식도 바뀔 것이다. 법을 통해 사용자가 될 사람들에게도 노동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알려줄 수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교육은 재발 방지다.”

번번이 실패한 노동교육법안
“손편지 쓰고 찾아가 설득하겠다”

노동인권교육을 활성화하거나 의무화는 법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16년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이름의 법안을 냈지만 역시 같은 결말을 맞았다. 21대 국회에서 강 의원은 같은 법안을 냈고, 환노위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 기존 노동교육법안이 폐기된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국회에 있었지만, 법안 통과까지 이르는 사회적 합의에는 미치지 못한 게 아닐까. 21대 국회 때는 필요성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 법제정 과정에서 있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는 의원 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노동자 교육의 주체인 학생, 시민들의 문제의식 공유나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내는 일이다.”

당사자들은 노동교육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광주시교육청이 발표한 ‘청소년 노동인권 의식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역 청소년 3천289명 중 2천993명(90.1%)은 “(학교 내)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8년 10~11월 전국 17개 시·도 325개 초·중·고등학교 재직교사 326명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309명(94.8%)가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 법안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기본소득당·열린민주당 의원들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한 명도 없었다.
“지난달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홍정운군 죽음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위원회의 모든 의원들이 탄식했다.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교육을 하지 않고 아이를 보냈기 때문에 사용자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다, 현재 사회구조가 특성화고 학생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사람 중심의 정책을 만들자는 데에 초점을 맞추면 가능하다고 본다.

노동인권교육법은 교육위원회 소관이다. 교육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모두 손편지를 쓰고 찾아가 설득할 생각이다. 전교조와 민주노총·특성화고 권리연합회 등이 모인 당사자단체 ‘학교부터 노동교육운동본부’와 소통하고, 한국노총 교사노조연맹과 알바노조·청년유니온 등과도 접촉해 법안의 필요성을 알리고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할 것이다. 다만 법안을 심사하면서 본질이 바뀌는 것은 경계한다.”

“각종 의혹들 무혐의 나오고 있어, 재판에서 밝혀질 것”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윤미향 의원은 현재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후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 의원이 후원금을 유용했다고 보고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관리법) 위반, 업무상 횡령, 배임, 준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 횡령 등 의혹에 대해 재판 중이다.
“지난해 언론에서 저와 정의연에 대해 숱한 의혹들을 제기했다. 횡령금으로 딸 유학비를 댔다던가, 모 의원의 제기로 시작된 단체 돈으로 아파트 다섯 채를 샀다는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검찰은 나와 주변 사람들의 계좌를 모두 조사했다. 그 결과가 검찰 무혐의 결론이다.

그밖에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있고, 재판에서 진실을 다투고 있다. 검찰이 기소했다고 해서 죄가 확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대협 실무자들이 정부에 특정 프로젝트를 신청하고 수행하며 별도로 받는 인건비를 스스로 정대협에 기부했는데 이를 두고 보조금 사기로 기소했다. 30년간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검찰이 기소한 것처럼 살아오지 않았다. 재판을 통해 30년의 시간을 입증해 나가겠다.”

윤 의원은 마지막으로 법안 통과를 당부했다.

“청소년·청년노동자들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분노했습니다. 분노가 식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노동현장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법이기도 합니다.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구조를 만드는 법입니다. 법 제정을 향후 활동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 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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