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군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해고노동자 박주연(사진 가운데)씨가 지난 2일 오전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관계자들과 함께 사업주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박주연씨 제공>

해고는 순식간이었다. 정직 3개월의 징계가 끝나자마자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전라남도 인권센터의 ‘직장내 괴롭힘’ 시정권고 결정이 나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형식적인 소명만 듣고는 그 자리에서 해고가 결정됐다. 회의실을 나오는데 인사위원들끼리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도 났다.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한 직원이 열쇠를 반납하라고 했다. 출퇴근 지문등록도 삭제됐다. 4명이 전부인 직장이지만 밥벌이의 소중함을 느꼈는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직장내 괴롭힘’ 당하고도 정직에 해고까지
센터장·동료 사무원 “미친X, 사형감” 폭언

진도군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버스 운전원으로 일하던 박주연(48)씨는 지난 9월28일 해고됐다. 센터는 다섯 차례에 걸쳐 박씨에게 징계위원회 출석을 통보했고, 6월18일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한 뒤 해고했다. 운행마감 후 사무실 미복귀와 더불어 △이용료 미입금 △센터장 지시 미이행 △이용자 민원 △직장내 위계질서 위반이 해고 사유 목록에 담겼다. 해고예고는 없었다.

그때부터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센터 상주 직원은 박씨를 포함해 센터장 A씨·사무원 B씨·운전원 C씨 등 4명이 전부였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5명 미만 사업장’이다.

박씨는 2015년 12월7일 입사 이후 수시로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인권센터 결정문에 따르면 박씨보다 8살 어린 B씨가 괴롭힘을 주도했다. 박씨가 징계 해명자료를 위해 B씨 책상에 있던 서류를 찾아 복사하자 “나이 처먹고 나잇값도 못 하고, 도둑년이야? 한심하다 한심해. 제 새끼가 뭘 보고 배우겠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내가 구속감이면 넌 사형감” “미친X, 앞에서는 말도 못 하는 X” 등 언어폭력이 반복됐다.

B씨가 징계 과정에도 개입했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인사위원회를 열 필요도 없이 형사 고소해서 처벌되면 저 X은 바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A씨도 거들었다. A씨는 “공금 횡령한 도둑X” “멍청한 X” “X 같은 X” 등 욕설을 했다. “스스로 못 견뎌서 사표 쓰게 만든다” “모가지를 딴다”는 말도 들었다고 박씨는 말했다.

형사고소·취하 반복에 업무 배제
직장내 괴롭힘에 공황장애·우울증 발병

센터는 혐의점이 불분명한 죄목으로 박씨를 여러 번 고소했다가 취하하기를 반복했다. 지난해 12월 센터는 사문서위조·명예훼손 등으로 두 차례 박씨를 경찰에 고소한 후 취하했고, 사건은 불기소로 검찰에 송치됐다. 센터는 박씨가 기자회견을 열자 지난 6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박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지속해서 경찰서에 출석해야 했다.

괴롭힘은 집요했다. 자녀가 아파 연가를 사용하겠다는 박씨에게 A씨는 “연가 허락은 내 마음”이라며 불허했다. 업무에서도 배제되기 일쑤였다. 박씨만 법정의무교육과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을 받지 못했다.

박씨는 “고문 같았다”고 말했다. 직장내 괴롭힘이 시작된 2019년 5월부터 급성스트레스·불안감·공황장애·우울증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머리카락이 빠졌고 수면장애도 겪었다. 정신의학과에서 상담받으며 “직장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옥 같은 상황이다”고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한 언론사가 지난 8월 박씨를 ‘가해자’라는 식으로 표현해 2차 피해도 입었다. 이후 이 언론사는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에 따라 지난달 “피해자로 밝혀졌다”며 정정보도했다.

인권센터 이어 인권위 ‘관리·감독’ 의견표명
진도군,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위반 여부 검토 예정

박씨는 “5명 미만 사업장이라 구제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3 수험생인 아이가 눈에 밟혔다.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고용노동부의 답변에 전라남도 인권센터를 찾았다. 도민인권보호관은 지난해 5월과 올해 3월 직장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당시 인권보호관은 박씨에게 유급휴가와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동지원센터는 시정권고를 무시했다. 박씨 사건을 담당한 인권보호관은 “다른 지자체 기관은 대개 권고를 이행하는데, 진도군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전혀 듣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진도군은 인권센터 결정에 움직였다. 그러나 곧바로 ‘셀프채용’ 논란이 일었다. 센터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진도군지회에서 운영했는데, 당시 시각장애인인 A씨가 센터장을 겸임했다. 무급 명예직인 센터장을 유급으로 변경하라는 인권센터 권고에 진도군은 지난 3월 센터장 공모를 직원인 C씨에게 맡겼다. 그런데 C씨 본인이 입후보했고 결국 센터장 자리에 앉았다. 박씨는 C씨도 자신을 괴롭힌 직원 중 한 명이었다고 주장했다.

센터장이 교체되고 상황은 더 악화했다. 6월18일 정직 3개월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운행이 끝난 뒤에도 사무실에 복귀하지 않고 손님에게 받은 이용료를 입금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박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직장내 괴롭힘 시정권고 불수용에 따른 인권침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인권위는 3개월 만인 지난달 27일 직장내 괴롭힘 해당 가능성이 크다며 지자체가 관리·감독하라는 의견표명을 했다. 다만 센터가 공직유관단체가 아니어서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진정은 각하했다.<본지 2021년 10월29일자 4면 “정직에 결국 해고, 3명 사업장 ‘직장갑질’ 피해 노동자” 참조>

진도군도 태도가 바뀌었다. 진도군은 인권위 결정 이전에는 관리·감독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진도군은 박씨 해고가 ‘부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살필 계획이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의 장애인복지시설 행정처분기준에 따르면 기관에 ‘회계 및 시설운영과 관련한 부당행위’가 발생해 지자체의 행정명령을 세 차례 위반하면 시설장 교체까지 가능하다. 진도군은 11일 전남도 장애인복지과와 전남도인권센터 관계자들과 만나 법령 적용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기관이 2차로 위반했을 때 부과되는 ‘개선명령’에 박씨의 복직 가능성 포함 여부도 타진한다. 진도군 관계자는 “인권위 의견표명을 토대로 직장내 괴롭힘과 해고가 부당행위에 해당할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도군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해고된 박주연(48)씨가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노동도시연대 사무실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하는 한민옥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홍준표 기자>
▲ 진도군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해고된 박주연(48)씨가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노동도시연대 사무실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하는 한민옥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홍준표 기자>

산재 인정됐지만, 근기법 위반한 해고 논란
‘최후 수단’ 손배소 제기, 해고무효 소송 계획

그러던 중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산재가 인정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는 지난달 27일 박씨에게 요양·보험급여 지급 결정을 통지했다. 6월16일부터 9월16일까지 요양기간으로 승인했다. 그런데 인정된 요양기간이 해고 시기와 맞물린 점이 드러나며 새 국면을 맞았다. 박씨는 9월27일 해고됐다. 하지만 이때는 법률상 센터가 해고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근로기준법(23조2항)은 사용자가 질병의 요양을 위해 휴업한 지 30일 동안은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박씨가 가입한 공공운수노조는 즉각 “해고금지 규정은 5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므로 사업주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박씨는 지난 2일 노동부에 현 센터장을 근기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인권위 의견표명과 산재 인정에도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센터측이 5명 미만 사업장이라는 ‘방패’로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센터는 직장내 괴롭힘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4일 <매일노동뉴스>에 “박씨의 주장은 모두 허위사실이고, 고소건은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결국 구제 수단이 없는 박씨는 민사소송을 냈다. 박씨를 대리한 한민옥 변호사(법률사무소 율)는 지난달 26일 B씨와 전 센터장 A씨·시각장애인연합회 이사·진도군수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재판이 진행된다. 박씨측은 앞으로 해고무효 소송도 접수할 계획이다.

한민옥 변호사는 “박씨는 자신이 속한 사업장이 5명 미만이라는 이유로, 직장내 괴롭힘에도 어떠한 구제를 받을 수 없었다”며 “최후의 수단으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는 인권위에 자신이 당한 불법행위를 적극적으로 입증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참고인이 괴롭힘을 입증해 줬다”며 “어디에서도 구제받을 수 없었던 피해를 금전으로나마 보상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세아 노조 조직쟁의차장은 “인권위 의견표명이 나온 만큼 지자체에서 이제라도 가능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최선을 다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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