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개는 이쁘다. 좋은 친구다. 식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개라는 말이 참 얄궂다. 가위표 두 개 앞에 붙어 차진 그 유명한 욕이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뜻을 품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여러 단어 앞에 붙어 그 느낌을 강조하는 부사 노릇을 하기도 한다. 개억울, 개멋져, 개맛있어 같은 용례가 있다. 개는 말이 없다. 다 사람의 일이다. 죄 없는 개는 그저 꼬리 흔들고 몸을 부벼 애정을 표현한다. 어느 정치인의 개 사진이 입방아에 올랐다. 개에게 사과를 주는 모습인데, 그걸 본 누구나가 사과는 개한테나 줘 버리라는 말을 떠올렸다. 광주시민 학살 주범을 옹호한 발언이 문제가 된 뒤였다. 도시 개는 망망, 시골 개는 월월, 개가 짖으면 그런가 보다 한다. 사람이 짖어 대면 그게 문제다. 뉴스가 된다. 개소리는 매력적인 뉴스거리니 온 데 시끌벅적하다.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주 거기 묻혀 들리지 않는다. 간절한 사람들은 농성장을 꾸리고 밥을 굶는 고행으로 스스로 뉴스가 되기를 바란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 대우조선과 아시아나항공 노동자 농성장에 개가 한 마리 찾아와 엄마 곁에 머문다. 농성장 식구란다. 카메라 들이대니 이게 뭔가 싶어 쳐다본다. 어리둥절, 아니 이럴 땐 ‘개둥절’이라고 하던가. 개는 사람의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니, 이 또한 다 사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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