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가 지난 13일부터 제조업 불법파견 문제를 개선할 제도개혁을 요구하며 전국순회투쟁을 한다. 노조는 대기업 제조업 사업장에서 불법파견이 없어지지 않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검찰의 소극적인 대응이라고 본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대부분 불법파견 판결이 나오지만 검찰은 사업주 기소를 주저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비판이다. 한국지엠·현대중공업·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가 이를 증언하는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안종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서진이엔지) 조합원
▲ 안종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서진이엔지) 조합원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송두리째 갉아먹는 불법파견 범죄행위가 한국 제조업 현장에 등장한 지 20년이 넘어 간다. 2021년에도 비정규 노동자의 삶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 자고 일어나면 전국 어딘가의 사업장에서 또 비정규직 문제로 투쟁이 일어난다. 문제가 있으니 해결하려고 노동자가 투쟁에 나서지만 세상은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집회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국회에서 기자회견 한 번 열기가 힘들다. 그러나 노동자만 힘들 뿐이다. 큰 백화점은 사람으로 미어터지고, 힘 있는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장은 사람으로 넘쳐 난다. 가진 자들은 코로나가 비켜 가고, 없는 사람은 코로나를 몰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고, 못 살겠다고 외치기만 하면 방역 관련 법을 위반한 범죄자에 반사회적 행위자로 낙인이 찍힌다. 노동조합의 손발이 꽁꽁 묶였으니 재벌은 코로나가 고맙고 또 고마울 것이다.

코로나만 재벌 편이 아니다. 불법을 바로잡고 올바른 행정을 펼칠 의무가 있는 고용노동부와 검찰도 재벌 편이다. 노동부와 검찰이 과연 불법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다. 불법파견이 이 나라 공장에 퍼진 지난 20년 동안 비정규 노동자는 때로는 목숨을 던지면서 차별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려 투쟁했다. 복잡한 내용도 아니었다. 관련 법에 제조업은 불법파견하지 마라 했는데, 재벌이 법을 일부러 어기면서 생산의 큰 축을 불법파견 노동으로 채웠다. 그러니 법을 어긴 사람, 불법파견 사용주를 벌주라는 내용이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설마 대한민국 검사들이 이것을 몰라서 불법파견 범죄를 저지른 사용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인지 비정규 노동자로서 정말 검찰에 묻고 싶다.

내가 일하는 현대건설기계는 현대중공업에서 강제로 계열사로 분리당한 사업장이다. 모체가 현대중공업이니 크고 작은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위험한 현장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에만 해도 4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현장의 안전조치 미비로 다치고 목숨마저 잃는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데도 국가행정기관인 노동부의 관리·감독은 실효성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

검찰은 한술 더 뜬다.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발생한 현대중공업 중대재해 4건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635건에 대해 지난달 27일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은 사용자에 대해 고작 벌금 2천만원을 구형했다. 한 건당이 아니라 639건 모두가 고작 2천만원 벌금이니 이게 처벌인지 면죄부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은 산업안전에 굳이 돈 쓸 필요 없이 벌금으로 해결하라는 신호처럼 들린다. 중대재해로 사용자를 처벌해야 죽음을 막을 텐데 검찰의 태도가 이러면 어떤 자본가가 법과 검찰을 무서워하겠는가. 결국 검찰의 재벌·대기업 눈치보기 때문에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죽음은 앞으로도 막지 못할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조선소 문을 열고 49년 동안 확인된 중대재해 사망자가 471명이다. 그리고 죽음의 외주화라고 표현되는 조선소 다단계 불법하도급에 따른 위험 노동의 낙수효과가 시작된 이후로는 하청노동자가 죽음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검찰이 지난 20년간 불법파견 범죄행위를 제대로 처벌했다면 현대중공업의 불법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희생되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는 획기적으로 줄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검찰이 칼을 빼고 불법파견을 근절해야 생명을 구할 텐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처럼 불법파견은 비정규 노동자를 처참한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악질범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악질범죄를 처단하고 비정규 노동자가 더는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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