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중기 한신대 교수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전투구가 극심한데 우리 시민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6년 퇴직금이 50억원이라거나 수백억원의 뇌물 리스트, 나아가 수천억원의 불로소득을 나눠 가지는 검은돈 잔치를 보면 할 말이 없다. 또 검찰이 야당을 사주해 여당 정치인을 고발하는 희대의 불법 정치공작이 벌어져도 여야 모두 책임 전가에 여념이 없다. 국회의원은 물론 검사와 검찰총장·대법원 판사·재벌·대선후보가 주연인 이 저질 코미디를 언제까지 봐야 할까.

주지하듯이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항쟁으로 손쉽게 집권했고 스스로 촛불정부임을 자임했다. 그리고 적폐청산과 재벌개혁, 노동존중과 복지확대,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부동산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요컨대 체제전환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4년반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오히려 진정한 ‘헬조선’이 됐다.

‘집값은 걱정마라’는 대통령의 거듭된 공약(空約)은 엄청난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돌아왔다. 결혼도 출산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 이제 삶조차 포기하는 ‘삶포세대’가 됐다. 적폐의 상징 재벌 범죄자를 풀어 주면서 촛불항쟁의 주역인 민주노총 위원장을 감옥에 가두는 일이 노동존중의 실상이었다. 그토록 요란했던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한때의 일장춘몽이 됐다. 선거법 개정을 포함한 정치개혁은 결국 여야 담합의 위성정당 사기극으로 끝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촛불배신정부’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10월20일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문재인 정부와 수구세력의 적대적 상호협력으로 폐기된 촛불의 요구를 되살리자는 것이다. 세계 최고 자살률과 최저 출산율, 최장 노동시간의 산업재해 공화국, 극심한 비정규직 차별과 빈부격차, 무법천지 재벌공화국. 곧 대한민국은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산적한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대장동과 화천대유’ ‘고발사주’ 등 대선판 권력다툼에 골몰하는 지배 세력에 경종을 울리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70년,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50년이 지났지만 수백만 명에 이르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여전히 법의 보호 밖에 있다. 노동법을 전면 개정해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 또 중단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사용사유 제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도 새로 추진해야 한다. 노사관계 영역에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폐지하고 산별노조를 법제화하는 일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좁은 의미의 노동문제를 넘어 기후위기,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정의로운 산업전환, 일자리의 국가보장제 등도 노동체제 전환의 주요 과제다. 또 주택·의료·교육·돌봄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지 않고서는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나라가 수십 년 전에 성취했던 일이지만 우린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파업 소식과 함께 자본과 보수 언론, 집권세력의 비난 목소리도 요란하다. 경총 등 자본단체는 코로나 방역 방해, 불법파업, 정치파업으로 여론몰이에 나섰고 조·중·동과 종편 등은 이를 대규모로 전파하는 중이다. 민주노총이 ‘강성 귀족노조’라는 자본과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는 이들 모두에게 하나의 신념이 됐다.

그러나 귀족노조론은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우선 현재 110만 조합원 가운데 40만명이 비정규 노동자인 것부터 귀족 규정과 배치된다. 나아가 민주노총이 지난 20년간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우리 사회의 유일한 조직이란 사실도 중요하다. 반면에 정리해고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을 만들어 비정규 노동자를 크게 늘린 것은 더불어민주당과 집권세력, 이들과 협력한 언론과 수구세력이었다. 노조 총연합단체 위원장을 투옥한 정부의 주요 인사가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하는 나라. ‘귀족노조론’은 이런 나라에서만 가능한 자본이데올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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