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47년 동안 471명 사망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억하고 되짚어야 할 숫자다.

검찰은 올해 3월 이례적으로 중대재해 수사를 위해 현대중공업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는 상설감독팀을 구성하고, 현대중공업에 대한 대대적인 관리·감독을 펼쳤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사측은 전사적으로 근원적인 안전보건관리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도 현대중공업에서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창사 이래 47년 동안 471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국내 단일 사업장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다. 또한 471에는 희생된 노동자 개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유족과 수많은 동료들의 아픔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과 피해에 대한 책임은 어느 누구도 지지 않고 있다.

지난 9월27일 울산지방법원은 2019년 9월부터 2020년 5월까지 발생한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책임과, 고용노동부 특별감독에서 적발된 653건의 안전조치 위반에 대한 첫 공판을 열렸다. 한형식 대표이사를 포함해서 전·현직 임원들은 법정에서 653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사고를 예견하기 어려웠다”거나 “필요한 조치는 다 했다”며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했다. 대신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로 책임을 떠넘기는 진술을 했다. 47년 동안 매해 1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위법하고 부실한 안전보건관리로 목숨을 잃고 있는 사업장이 현대중공업이다. 고용노동부 감독 때마다 수백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이 됐던 현대중공업의 자기변명은 그동안의 솜방망이처벌에 따른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검찰 출신 전관예우 변호사를 통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확신에 따른 것이다.

최근에도 사망사고

지난달 30일 울산 현대중공업 2야드 8도크와 9도크 사이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오후 3시께 8도크의 3196호선에서 작업을 하다가 휴식시간에 맞춰 배 밖으로 나와 휴게공간으로 이동하던 최OO 노동자(우신기업 소속, 1953년생)가 14톤 굴착기 바퀴에 깔려 사망했다.

금속노조 중대재해 대책위가 현장조사를 통해서 사고원인을 확인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자통로 미확보, 건설기계 등에 대한 충돌방지 미조치, 신호수 미배치, 작업계획서와 작업지시서의 부실, 굴삭기 운전자 시야 사각지대에 대한 예방조치 미흡, 굴삭기 용도 이외의 사용과 개조 등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관리부실이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은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작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를 교통사고로 둔갑시켰다. 중대재해에 따른 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노동부를 포함한 국가권력의 무능력과 외면 때문이다.

원래 위험하고 어쩔 수 없는 죽음은 없다

471이라는 숫자는 결코 가볍지 않다. 조선소는 원래 위험한 현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노동자들의 무덤이 됐다. 노동자들의 목숨값으로 부를 쌓았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한 작업과 일터라 하더라도,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를 최우선에 두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됐다면 충분히 예방하고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현대중공업은 노동자들의 목숨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법인을 분리하고 수많은 공정과 작업을 외주화했다. 다단계 하도급·물량팀을 통해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면서, 사업주로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노동자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원과 검찰·보수 언론은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죽음에 대해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시각을 견지했다. 기업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 왔다. 올해 현대중공업에서 발생된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검찰과 노동부는 사업주를 기소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2017년 5월에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와 관련해 삼성중공업 원청과 하청업체의 안전조치의무, 산업재해예방조치 의무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무죄 판결한 1·2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사업주 등이 구체적인 안전조치의무를 부담하는지에 대해 대규모 산업현장이 가지는 본질적인 위험성과 과거 산업재해의 발생 전력, 관계 법령에서 정한 의무의 내용과 취지 등에 비춰 사업주에게 산업안전사고 예방에 합리적으로 필요한 정도의‘구체적인 안전조치의무’가 부과돼 있다고 해석했다. 이렇게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결이 만들어지는 데 4년이 넘게 걸렸다. 더 이상 일터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것이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27일부터 시행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영향도 있다. 법제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감독과 대응이 더욱더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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