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소속 화물노동자들이 9월15일부터 파리바게뜨 등 SPC그룹 사업장들에 대한 전면적인 운송거부 투쟁을 하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과 방송들은 파리바게뜨 가맹점들의 빈 진열대를 부각하며 민주노총이 노노 간의 이권다툼으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며 불법파업을 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SPC가 투입한 파업 대체 차량 파손 등 여러 사건을 엮어 파업 중인 화물노동자들을 폭력·범죄 집단으로 내몰았다.

화물노동자들이 코로나19 시기에 무엇 때문에 운송거부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 제대로 알리기는커녕 방역당국 초비상이라느니, SPC 사업장 운송방해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당국의 위압적인 입장을 전하는 기사들로 차고 넘친다. SPC그룹의 입장은 앵무새처럼 받아 적으면서도 정작 파업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화물노동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심층취재한 보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SPC그룹은 SPC삼립과 파리바게뜨·배스킨라빈스·던킨·샤니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2030년 매출 20조원을 목표로 삼고 있는 국내 1위 식품업체로, 제빵업계의 삼성으로 불린다. SPC그룹은 식품과 식재료 유통을 위해 물류계열사로 SPC GFS를 두고 있다. SPC GFS는 식재료 운송을 운수사에 위탁하고, 운수사는 다시 특수고용 노동자로 불리는 지입차주들에게 재위탁하는 체계로 유통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유통의 꼭짓점에 SPC GFS가 있고 가장 밑바닥에 화물노동자들이 위치해 있는 셈이다. 화물노동자들의 운송과 노동조건을 결정짓는 것은 운수사가 아니라 원청인 SPC GFS임은 불문가지다.

SPC GFS, 운수사-화물연대와 맺은 3자 합의 뒤집어

SPC그룹 사업장들에 대한 화물연대 운송거부 투쟁의 원인은, 운송량 증가에 따른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SPC GFS(주선사)-운수사-화물연대 3자 사이에 체결한 합의사항을 SPC GFS가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고, 합의파기 책임을 화물연대에 전가한 데서 비롯되고 있음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파업 배경과 경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화물연대 운송거부 투쟁은 9월2일 광주에서 시작됐다. 지난 10여년 동안 광주지역에서 가맹점이 2배 이상으로 증가해 운송량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으나, 배송차량과 인원은 늘어나지 않아 화물노동자들은 종전 인원 그대로 증가한 업무량을 감당해야 했다. 올해 초 화물연대는 과중한 업무량과 운행거리를 줄이기 위해 증차를 요구했다. 그런데 화물연대의 증차 요구에 한국노총 소속 복수노조(이하 복수노조)는 “무슨 증차냐, 필요 없다. 나중에 감차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감차가 되면 화물연대 순으로 잘라라”며 회사 입장을 대변하듯 반대했다.

올해 1월부터 SPC GFS(주선사), GFS운수사상생협의회, 화물연대 광주지역본부 사이에 일부 코스에 대한 과중한 업무량과 운행거리를 줄이기 위한 협의에 들어가 지난한 협상 끝에 지난 6월17일 배송차량 2대를 증차하기로 합의했다. 증차 합의 후 운수사와 배송코스에 대한 협의를 거쳐 지입차주 2명을 모집하고 이들에 대한 이틀간의 동승 교육까지 마쳤다. 그러자 증차가 필요 없다며 반대하던 복수노조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2대의 증차분 중 한 대는 자신들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새로이 모집된 기사들이 차량 구입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에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증차되는 차량을 배송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차량들이 담당하던 배송코스와 일정한 조정이 필요한데, 복수노조는 2대의 증차분 중 1대를 자기들에게 달라는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화물연대에서 어떤 조정안을 들고 와도 무조건 반대했다. 한편 SPC GFS는 배송코스에 대해서는 두 노조 간 합의해 오라고 요구하고 그래야만 절차를 진행시켜 주겠다며 복수노조의 어깃장에 맞장구를 쳤다. SPC GFS는 복수노조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배송코스 조정 반대를 명분 삼아 증차 합의의 이행을 거부했다.

SPC GFS는 “증차 확정은 자기들 역할이지만 그 후 코스 배정 부분은 운수사와 기사들 간 협의에 의해 진행되며 본인들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운수사와 기사들 사이에 수많은 협상이 진행됐다. 어떤 실마리도 풀리지 않자 9월2일 화물연대 광주지역본부 SPC지부는 증차 합의이행을 촉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비로소 운수사에서 협상안을 제시했고, 화물연대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자신들의 요구안을 내려놓고 운수사의 협상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여 합의에 이르렀다.

운수사-화물기사 사이 문제라더니
합의서 작성하려 하자 파기 지시

그런데 합의서 작성을 준비하던 중 SPC GFS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SPC GFS는 코스 배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자신의 약속을 뒤집고 “운수사와 합의한 내용이 SPC의 기준과 이념과 맞지 않고 효율이 나지 않기 때문에 합의한 코스를 취소하고 폐기하겠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며 합의를 파기시켰다.

“당사는 운수사에 물류 용역을 맡긴 위탁사로서 운수사와 소속된 배송기사들과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음에도 화물연대는 위탁사와 가맹점의 영업과 생존권을 위협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라는 SPC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화물연대는 배송코스에 대해 운수사와의 최종 합의를 통해 파업을 종료하려 했으나 SPC GFS가 합의파기를 지시함으로써 파업에 불을 질렀다. SPC의 거짓 주장과 공권력의 탄압에 맞서 9월15일부터 화물연대가 전면파업으로 확대하자 다음날인 16일 SPC GFS는 일부 운수사와 계약 종료를 통해 광주지역 화물연대 조합원 36명을 해고했다.

올해 들어 SPC GFS의 합의파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4월12일 SPC GFS는 “수송차량에 대해 상차 업무는 차주와 센터 작업자가 공동으로, 하차 업무는 (SPC GFS) 출하반이 전담하는 것으로 6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합의했으나, SPC GFS는 센터 인원 충원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출하반 작업자들은 합의이행을 거부했다. 위 합의 불이행에 대해 화물연대 SPC지부가 하루 파업에 돌입하자 재차 합의이행과 파업 관련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SPC GFS는 또다시 합의를 불이행하고 손해배상액을 공제하고 운송료를 지급했다. SPC GFS는 화물연대와의 합의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파기하고 뒤집었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파업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SPC그룹의 매출 증가로 늘어난 과중한 업무를 줄이기 위해 합의사항의 이행을 촉구하는 화물노동자들인가? 아니면 화물노동자들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쥐고 합의사항을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며 횡포를 일삼고 있는 SPC 자본인가?

이처럼 광주에서 시작된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은 화물연대가 노노 간의 이권다툼으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의 생존권을 볼모로 하는 이기적 파업이 아니다.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와 금력을 이용해 노노 간 갈등을 조장하고 그 갈등을 명분으로 노동조건 개선을 거부하며 합의사항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SPC 자본의 반노동 갑질 횡포에 맞선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다. 그럼에도 SPC 자본은 파업 중인 화물노동자들을 굴복하기 위해 그 가족들에게 수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계약해지를 시사하는 문자를 보내 협박하고 있다. 화물노동자들의 정당한 운송거부 투쟁을 지지하며 SPC 자본의 합의파기에 대한 사과와 신속한 합의이행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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