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선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당·정·청에 2020년 합의 보증을 이행하라며 1인 시위를 했다. 6월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정을 따라다니며 1인 시위를 시작한 이후 29번째다. <기업은행지부>

더불어민주당 1기 민주여성아카데미 개강식이 있었던 지난 28일 오후 5시30분 영등포구 당사 앞. 익숙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형선(45·사진)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이다. 곁을 지나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익숙한 듯 그와 주먹인사를 나눴다. 김 위원장이 송 대표의 공식일정마다 나타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팬이어서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당사 앞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약속을 지켜라”는 문구를 적은 푯말을 들고 익숙한 듯 자리를 잡았다. 한쪽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보증을 서는 것입니다”는 취지의 지난해 1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당시 원내대표의 말도 나란히 적었다.

그는 지난 4월 청와대 사랑채 앞 1인 시위를 시작으로 당과 정부, 그리고 청와대 앞에서 ‘보증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6월2일부터는 송 대표의 공식일정을 따라다니며 이렇게 시위를 한다. 29일 오후 김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인 시위 시작한 지 164일째

“2020년 신임 행장 취임 당시 당·정·청은 기업은행 노사의 합의사항을 보증했어요. 역대 최장 26일간의 낙하산 행장 출근 저지투쟁의 결과였습니다. 합의문에는 노조추천이사제와 희망퇴직 시행, 정규직 정원통합, 선택적 복지비 증액 등을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습니까. 종잇조각이 됐습니다.”

4·7 재보궐선거가 끝난 다음날 금융위원회는 노조추천이사제 합의를 뒤집고 기업은행이 제청한 사용자쪽 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금융노동자들은 분노했다.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를 선언했던 금융노조는 12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정·청을 규탄했다.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 당시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아니라 청와대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는 사실도 폭로했다. 이후 당대표로 취임한 송 대표에게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송 대표를 그렇게 만난 게 벌써 29차례다. 청와대 앞 첫 1인 시위를 시작한 4월19일부터 따지면 이날로 164일이나 됐다. 이사이 만난 국회의원들과 의미 있는 행동을 나서기도 했다. 국책은행 희망퇴직 제도 도입을 위한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과의 간담회 등이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9일 기업은행지부와 노조 KDB산업은행지부·한국수출입은행지부와 국책은행 희망퇴직 도입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김 위원장과 만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간담회까지 열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직자들, 노동자에 미안해하는 정서 있다”
“1금융권 최초 노조추천이사 기여했다면 감사”

29차례나 마주한 당 관계자들은 어떨까. 김 위원장은 “당정 관계상 노동자의 압박이 도움이 된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설명했다. 무슨 의미일까. “간혹 마주하는 당직자들은 와서 격려해 주기도 하고 그래요. 기획재정부가 말을 듣지 않을 때가 많은데 노동자가 움직여 주면 자기들도 정부를 설득하는 데 힘이 실리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4·7 재보궐선거 직후 노동자 등에 칼을 꽂은 것 아닙니까. 미안해하는 정서가 있어요.”

성과도 있다. 수출입은행은 최근 사외이사로 노조추천이사를 선임했다. 1금융권 최초다. 금융노조가 꾸준히 두드린 경영참여의 길이 마침내 열린 것이다. 김 위원장은 “수출입은행지부의 끈질긴 노력과 투쟁의 결과”라며 “송 대표가 당과 기재부를 설득해 준 것이 큰 도움이 됐고, 이 과정에 보증이행 쟁취투쟁이 기여했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 노조추천이사제도, 국책은행 희망퇴직 도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다시 강경해졌다. “1인 시위를 하면서 기업은행 현안에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고 판단합니다. 송 대표의 실천 의지를 믿지만, 보증이행 약속투쟁의 목표는 기업은행의 인원과 예산을 통제하는 기재부를 움직이는 겁니다. 기업은행지부의 희망퇴직과 정규직 정원통합, 선택적 복지비는 기재부 소관이에요. 희망퇴직만 해도 청와대와 여당, 정의당은 이미 희망퇴직에 찬성 입장인데 홍남기 부총리가 머뭇거려 결론이 나지 않는 형국입니다. 홍 부총리의 몽니이고 아집입니다. 금융노조도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송 대표는 반드시 홍 부총리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지만 있을 뿐 능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 김형선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당·정·청에 2020년 합의 보증을 이행하라며 1인 시위를 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주먹인사를 나누는 모습. <기업은행지부>
▲ 김형선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당·정·청에 2020년 합의 보증을 이행하라며 1인 시위를 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주먹인사를 나누는 모습. <기업은행지부>

내년 국책은행 임금피크 적용 1천700여명
“청년에 질 좋은 일자리 제공”

기업은행은 노조추천이사제와 희망퇴직 제도 도입 같은 6대 과제 합의 당사자지만 이행은 외면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은행장은 친노동 인사가 아니다”며 “금융노조의 산별중앙교섭 과정에서도 사용자쪽 대표로 교섭을 난항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업은행지부와 했던 합의를 지키려 하는지도 의문이다. 해결 권한이 행장 본인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해 남의 일처럼 그저 미루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부는 국책은행 희망퇴직이 노조의 사회적 역할 수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청년고용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 내년 국책은행의 임금피크제 적용 인원은 1천700여명”이라며 “만약 제도를 도입하면 1천700개의 질 높은 청년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을 늘리기 위해 매년 정부가 1조원 넘는 돈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희망퇴직은 추가비용 없이 정책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제도”라고 덧붙였다.

최근 주 4일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노동시간단축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이런 배경이다. 김 위원장은 “이미 재택근무와 백신 휴가로 노동시간이 실질적으로 단축된 상황에서 은행의 이익이나 생산성에 저해요소가 없다는 게 확인됐다”며 “주 4일제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효과가 매우 크고, 외국 다른 기업도 주도적으로 시행하거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장 6개월여에 따른 보증이행 쟁취투쟁에 끝은 어딜까. “지부는 당·정·청을 향한 보증이행 쟁취투쟁과 금융사용자를 향한 산별중앙교섭 투쟁, 기재부를 향한 한국노총공공부문노조협의회 대정부 투쟁을 하고 있어요. 3개 투쟁 모두 기재부가 연결고리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기재부를 압박할 겁니다. 국정감사는 물론이고요. 기한은 ‘다 해 줬으니 그만 따라다니라’고 할 때입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