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한 집단 피부질환 사태의 원인이 국내 굴지의 도료업체가 생산한 친환경 페인트(무용제 도료)였던 것으로 최근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무용제 도료의 문제점을 알리고 재발방지책을 찾기 위해 현장 노동자·활동가·전문가의 글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윤덕기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 윤덕기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2020년부터 조선소에 신규로 도입된 ‘무용제 도료’를 사용한 노동자들에게 집단적으로 피부질환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주와 고용노동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1년 넘게 노동자들의 피해가 멈추지 않고 있다.

기존에 조선소에서 사용하던 페인트는 유기용제라 불린다. 시너를 희석제로 사용해 휘발성과 인체 유해성 및 대기환경 오염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조선소에서 기존과 같이 유기용제 페인트 도장작업을 수행할 경우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도장 비산배출 저감시설’을 설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업주들은 법의 제재를 피하고 설비투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친환경’이라 선전하며 신규로 개발한 ‘무용제 도료’를 도입했지만, 이름만 친환경일 뿐 노동자들에게는 심각한 건강피해를 유발하는 독성물질이었다.

무용제 도료를 사용한 노동자들, 심지어는 주변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피부 발진 증상을 호소했다. 이렇게 동일 제품을 취급하며 작업한 노동자에게 집단적으로 직업병이 발생했지만, 노동부는 즉각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원인을 규명해달라” “위험한 물질을 못 쓰겠다”는 노동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현장을 방치했다. 결국 위험물질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초기 대응을 하지 않은 노동부 때문에 무용제 도료로 인한 집단 직업병 발생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무용제 도료 사용으로 인해 지속해서 피해 노동자들이 발생했고, 노동조합의 끈질긴 원인 규명 요구로 노동부는 해당 물질로 인한 노동자 피해 상황 및 물질 안전성 조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노동부 조사 결과 신규로 도입된 무용제 도료에는 기존 페인트에 없던 아토피 증상 유발 유독물질이 다량 함유된 것이 확인됐다. 또한 검진 결과 무용제 도료로 인해 172명이 기존 또는 현재 유증상자로 밝혀져, 6명 중 1명에게서 피부질환 발생이 확인됐다. 이는 집단 직업병 발생에 따른 중대재해 발생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노동부는 중대재해 원인에 대한 개선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사업주가 직업병을 발생시킨 물질을 쓰지 않도록 하고 안전한 물질을 사용해 직업병 발생을 막는 것, 이것이 중대재해 발생 후 노동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노동부는 무용제 도료의 유독성과 이로 인한 피해 노동자가 다발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노동자들이 직업병에 걸리든 말든 노동자를 지켜야 할 책무를 내팽개쳤다. 무용제 도료 도입으로 인해 발생한 노동자들의 심각한 건강장애는 인정하면서도, 환경 보호를 위한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으로 무용제 도료가 도입돼 중간에서 입장이 곤란하다며 환경부 탓만 하고 있다.

노동자들도 대기환경과 자연이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환경 보호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보호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기환경과 자연도 보호되면서, 건강피해 없이 안전한 물질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따라서 환경부는 대기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책무를 다하고, 노동부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켜야 할 책무를 다하면 된다.

다시 말해 노동부는 무용제 도료로부터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지금 즉시 다음과 같이 근본 대책을 마련하고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우선 노동부는 지금 즉시 조선소에서 발생하고 있는 피부발진 현황을 현장 노동자들을 통해 파악하고 여전히 직업병이 발생하고 있다면, 안전한 대체 물질이 나오기 전까지 사업주에게 ‘무용제 도료 사용중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또한 노동부는 인체 유해성 사전검증 절차를 마련해 유해성이 있거나 건강피해가 우려되는 물질(피부과민성, 피부자극성, 직업병 발생 유발물질 등)에 대해 도입 및 사용을 금지하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사업주에게 이를 이행하도록 명령해야 한다.

그리고 신규 도료 도입시 개별 제품의 안전성이 인정됐다고 하더라도, 제품 혼합이나 시간 경과에 따른 화학반응으로 예상치 못한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공정 밀폐 및 배기장치를 설치를 통한 공학적 노출방지 조치’를 기본적으로 취한 후 작업하도록 명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용제 도료는 주로 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이 취급하면서 그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피해 노동자들은 재계약이나 고용문제로 인해 산업재해 요양신청은 물론이고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상태로 고통받고 있다. 따라서 노동부는 조선소 주변 지역 피부과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과 협의를 통해 피해 노동자가 눈치 보지 않고 산업재해를 인정받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로 인해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노동부는 노동자의 건강을 유지·증진할 의무를 지고 있다. 하지만 무용제 도료 피부발진 피해자들은 건강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1년 넘게 하고 있다. 노동부는 더 이상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무용제 도료로 인한 피부발진 문제를 중대재해로 규정하고, 지금 즉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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