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국택배노조(위원장 진경호)가 2017년 정부에서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고 출범 5년차에 접어든 지금 어느 때보다 격랑에 휩싸여 있다. 노조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거셌다. 지난해부터 과로사로 21명의 택배기사가 숨지면서 국민적 지지 속에 과로사 방지대책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됐다. 6년간 계약보장과 표준계약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서비스법) 시행으로 ‘무법천지’였던 택배현장에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 CJ대한통운 김포 장기대리점주가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대리점주와 택배기사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조의 거친 투쟁방식과 도를 넘은 괴롭힘 문제에 사회적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노조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진경호(58·사진) 위원장은 “거취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며 “노조의 투쟁방식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지 되돌아보겠다”고 말했다.

“노조운용 지침 재정비하고 괴롭힘 방지할 규약 개정할 것”

- CJ대한통운 김포 장기대리점주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나서 2주 가까이 사건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대리점주의 유서에 집단 괴롭힘에 대해 명확하게 적시돼 있다. 자체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정황을 확인했다. 괴롭힘을 행했던 당사자들에게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거다. 이와 별개로 노조활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국민과 밀접히 연관된 사업적 특성상 국민의 눈높이와 정서를 고려해 노조활동을 신중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 조합원 징계절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몇 명을 대상으로 어떤 수준으로 할 것인지) 확정된 것은 없다. 지금 섣불리 조치를 취하기보다 경찰조사를 지켜보고 결과에 따라 징계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내부 자정노력은 경찰조사와 무관하게 추진할 거다. 현장의 노조운용 지침을 공식매뉴얼로 만들어서 재정비하고 규약을 개정해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거나 욕설을 하는 행위, 집단 괴롭힘 행위를 징계사유에 포함시키는 일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규약 개정은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상정할 계획이다.”

-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54%가 ‘노조의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포 장기대리점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해당 대리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노조도 인정한다. 아침집회 때 대리점 소장이나 본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욕설을 하는 등 거친 투쟁방식에 대해 계속 문제가 돼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조사에 응답한 대리점은 190곳으로 이 중 102곳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CJ대한통운 대리점 2천여곳 중 5% 정도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대리점과 CJ대한통운 택배기사 2만3천여명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국토교통부에 공식 제안하려고 한다.”

노조는 10일 오후 국토교통부와의 면담에서 갑질을 비롯한 대리점주-택배기사 갈등 관련 전수조사를 제안했지만 국토부쪽에서는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경호 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에 “노조가 확보한 명단을 토대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1만명을 대상으로 10~11일 설문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리점 쪼개기→수수료율 인상→갈등 양산”

- 지도부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는데.
“이번 사건 이후 개인적으로 거취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일부 터무니없는 공세에 대해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고, 이번 사안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책임 있게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취 문제 관련해서는 사태가 정리된 이후에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다만 대리점연합회에서 위원장 포함 집행부 총사퇴를 요구하는데 이는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다. 대리점주는 법적으로 택배기사의 사용자다. 이번 사태에 대해 노조를 비난하는 것은 충분히 수용하겠지만 노조활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대리점연합회는 지난 9일 김포지회 조합원 전원 즉각 제명, 노조 규약에 집단 괴롭힘 등을 금지하는 내용 명문화,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위원장 포함 집행부 총사퇴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택배노조에 발송했다.

- 현장에서 대리점주와 택배기사 사이 갈등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뭔가.
“이런 일들이 왜 벌어지는지 구조적으로 접근하면, 노조가 설립된 곳은 대부분 소장의 갑질이 심했던 곳들이다. 수수료를 갈취 수준으로 가져가거나, 욕설이나 폭언을 일삼거나, 담당구역을 임의로 변경해 ‘자발적으로’ 나가게 만들거나, 계약해지를 하는 식이다. 갑질이 일상화된 곳에서 일종의 반작용으로 노조가 생긴다. 조심스럽지만 김포터미널의 경우 4명의 대리점 소장들이 담합을 통해 수수료율을 동일하게 받았다. 전국 최고 수준으로 1명당 170만~180만원 정도로 착취에 가까운 고율수수료를 책정해 가져갔다. 대리점주와 극한 대립이 있던 곳에서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울타리가 생기니까 그간 맺혔던 것들이 여과 없이 터져 나오는 측면이 있는 거다. 노조는 노조대로, 대리점주는 대리점주대로 자정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리점은 자체 수익구조가 없다. 택배기사들이 배송하고 집하한 금액에 대해 대리점수수료를 떼어가는 것 말고 별도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아니다. 건설현장의 인력파견업체 같은 구조다. 대리점을 쪼개서 소형화하면 대리점주도 다른 수입원이 없는 상태에서 소속 기사들의 숫자가 적어지기 때문에 수수료율을 높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구조를 만든 건 원청택배사다. 업계 1위였던 대한통운을 업계 3위인 CJ가 인수한 뒤 대리점제도가 전면화됐다. 대리점주는 택배기사한테는 갑이지만 원청 택배사한테는 철저히 을이다. 원청은 허울뿐인 소장을 앞세워 택배기사와 계약관계를 맺게 하고, 교섭을 비롯한 모든 법망에서 다 피해 나가고, 현장에서 불거지는 갑질도 ‘상관없다’며 사회적 비난에서 빠져나간다. ‘을과 을’의 싸움을 만들어 놓고 수천억원의 이익을 꿀꺽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거다. 택배요금 인상분 170원에서 105원이 원청 택배사 몫으로 가도록 연합회와 합의한 게 대표적이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국민 생활과 밀접한 택배, 파업 자주 하는 것은 지양해야”

- 자체조사 결과 발표 때도 CJ대한통운의 책임을 거론했다.
“대리점주의 생사여탈권을 원청이 쥐고 있다. 김포 장기대리점주가 생전에 월 3천만원 수익이 넘는 알짜배기 대리점에 대해 왜 포기각서를 냈을까. (노조는 지난 2일 고인이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게 된 배경에 CJ대한통운 김포지사장의 개입이 있었다는 취지의 녹취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해 11월 국토부에 김포 장기대리점이 지난 5년간 단 2번만 정상적으로 수수료를 지급했고, 4차례에 걸쳐 수수료를 삭감한 사실에 대해 시정해 달라는 취지의 신고가 접수됐다. 국토부는 한국통합물류협회에 조사를 의뢰했는데 당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5월 노조가 생기고 시끄러워지니까 원청에서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 언론사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유는.
“일부 언론보도가 도를 넘어섰다. 허위와 왜곡보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할 거다. 조선일보는 노조간부가 대리점주들에게서 ‘상납’을 받았다고 보도했는데 사실과 전혀 다르다. 이 간부가 비조합원에게 ‘발차기’ 폭행을 했다는 기사도 전체 영상을 보면 쌍방폭행인데 일방적 폭행인 것처럼 악의적으로 편집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10일) 제소했다. 고소·고발 조치도 취할 예정이다. 원청 택배사가 관리하는 CCTV 자료를 어떤 경위로 자극적인 보도에 활용하게 된 것인지 경위가 의심스럽다. CJ대한통운의 기획, 보수언론의 ‘노조 죽이기’가 결탁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 앞으로 대응계획은.
“대리점 소장의 권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다. 이는 얼마든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노조가 생겼을 때 대체로 초기반응이 격렬하게 나오는데, 노조를 인정하고 대리점 소장이 풀 수 있는 문제는 풀고, 원청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노조와 함께 같이 개선을 요구하는 방식이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출발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 국민의 생활과 밀접히 연결된 택배산업에서 파업을 자주 하는 것은 지양해야 된다. 최선을 다해서 국민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택배가 안정적으로 배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거칠게 대응해 왔던 부분은 자정노력을 해야 된다. 이런 노력들을 기울이되 또 원청사를 상대로 싸울 때는 단호하게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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