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한 배달노동자가 생을 달리했다. 음식 배달노동자였던 그는 신호대기 중이던 화물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생전에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꿈을 꿨는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기에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함께 숨 쉬며 살아 내던 동료시민의 안타까운 죽음이기에 아리고 아프다.

사고가 알려진 후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공간이 선릉역 8번 출구 앞에 마련됐다. 고인의 오토바이와 헬맷이 놓여진 곳에는 술병들과 국화꽃이 빼곡했다. 포스트잇에는 많은 방문객들의 추모글이 남겨졌다. 더불어 고인에 대한 ‘도넘은 비난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의 문구 또한 한켠을 차지했다.

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한쪽에선 애도와 추모가, 또 한켠에선 날선 비난이 자리 잡았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배달노동자들의 위험천만한 도로주행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했을 도로 위를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배달노동자. 중앙선을 위태롭게 넘나들고, 보행신호쯤은 가볍게 뒤로한 채 건널목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모습에서 위태로움을 느껴 봤음 직하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한편에서 배달노동자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배달노동자들의 아찔한 질주에는 이유가 있다. 기본급이 없기 때문에 건당 수수료로 창출되는 수입(평균 2960.6원)에 의존해야 하고, 일주일 중 주말을 포함 꼬박 주6일 1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하루 평균 34.1건의 배달을 완료해야 세전 평균 256만6천원을 거머쥘 수 있는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출처: 2020. 11. 19 ‘전국 배달노동자의 노동실태 분석과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자료집).

주행 중 다음 콜을 받기 위해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신호를 다 지키면서 8시간 근무하면 하루에 20건도 채우지 못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입을 받는다. 이들은 ‘시간 압박’을 배달앱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주문 후 음식을 기다리는 고객에게서도 받는다. 꼬박꼬박 매겨지는 평가점수는 덤이다. 라이더유니온 노동자들이 한 언론사 취재진과 준법운행 실험을 해 보니, 신호를 지키며 쉬지 않고 내달려도 인공지능 배달앱이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지각’이라는 메시지를 울려 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배달노동 수요도 더불어 증가했지만 척박한 노동조건은 변함이 없었다. 이런 현실은 고스란히 배달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나타났다. 올해 7월 도로교통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수 현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오토바이 사고 사망자가 최근 5년 사이 처음으로 전년보다 증가했다. 사망자수만 눈에 띄는 것이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륜차 교통법규 위반 건수는 2018년 26만3천760건에서 2020년 55만5천345건으로 2년 동안 2배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이렇듯 급격한 수요 증가와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 온 경제위기 상황에서, 먹고 살기 위해 배달노동에 나선 이들이 거리에서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상태의 노동자들이, 불안전한 노동에 편입되고 있는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구조적인 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고가 알려지면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배달노동자를 혐오하는 날선 목소리들이 자리 잡고 있어 우려된다. 특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어떤 집단이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존중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로 평가되면, 그들이 마땅히 보장받고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감각 또한 박탈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배달노동 과정에서 ‘희생당하지 않을 권리’ ‘안전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배달노동자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는 안전하게 일할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배달오토바이공제조합 설립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라이더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라이더보호법 통과를 위한 10만 라이더 서명운동’에 나섰다. 기존의 노동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새로운 고용형태 창출, 그 과정에서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들이 외로운 싸움을 벌이지 않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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