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보건의료노조 8만 조합원이 90%의 압도적 찬성으로 총파업을 결의하자 핵심 요구인 ‘공공의료·인력 확충과 간호사 처우개선’이라는 핵심 요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인력충원과 간호사 처우개선은 지난해 ‘덕분에 캠페인’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수차례 약속했고 최근 보건의료노조가 여야 대표를 면담하는 과정에서도, 25일 국회 보건복지원회 특별결의문에서도 빠지지 않으면서 최우선 해결과제로 부상했다. 그런데 과연 정부와 국회는 간호사들의 ‘처우’가 어떤지, ‘개선’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가 이어진 1년8개월의 이면에는 치매환자와 화투를 치는 간호사 미담도 있지만 장시간 근무로 뇌출혈로 쓰러진 전담병원 간호사, 헌혈자가 부족해 스스로 헌혈하는 헌혈의 집 간호사 등 피눈물 나는 사연들이 숨어 있다.

간호사의 ‘처우’를 잘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전체 간호사 43만6천명 중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수는 22만5천명으로 51.4%에 불과하다. 그나마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간호사 5명 중 4명은 사직을 고려하고 있다. 1년 미만 간호사 사직률이 무려 42.7%다. 이는 전체 산업 이직률 4.8%보다 9배 높은 수치다. 간호사들이 병원근무를 기피하는데 그나마 들어와도 1년을 못 버티고 나가는 숫자가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대형병원들은 매년 수백명의 간호사가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정년퇴임식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입사 후 100일만 버텨도 기쁘고 1년 버티면 감동이다. 그래서 현장은 백일잔치, 돌잔치가 수시로 열린다. 이런 직장을 과연 정상적인 직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환자안전은 보장될까?

매년 2만5천명의 간호사가 배출되는데도 병원마다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난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간호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병원이 제시하는 임금 수준과 노동조건에서 구할 수 있는 간호사가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간호인력 확충의 핵심은 단순히 채용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가 환자 곁을 떠나지 않도록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간호 현실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 어떤 처우개선 대책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70년 전 의료법 제정 이후 수십년 이상 누적된 간호인력 문제가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존의 불합리한 균형이 깨지면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파업투쟁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뒤흔든 99년 ‘Ratios’(간호사 대비 환자 인력비율법) 쟁취투쟁과 일본의 68년 ‘니파치 투쟁’(2·8 투쟁 : 2인 야근·월 8일 이내로서 야근을 제한하는 투쟁), 89년 ‘간호 물결투쟁’(nurse wave) 이상의 역사적 맥락을 가진 시대 전환적 투쟁이 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의 인력확충, 간호사 처우개선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래된 미래’다. 따라서 단순히 파업을 막기 위한 처우개선 대책을 넘어 방역대책 전환을 통한 위드 코로나 대책, 초고령사회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의료인력 준비라는 큰 그림에서 접근해야 한다.

간호사 처우개선은 1999년 간호등급차등제, 2016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행, 2019년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 등을 통해 조금씩 발전해 왔다. 하지만 더 이상 단편적인 대책만으로는 떠나가는 간호사를 붙잡을 수 없다. 이제는 미국 1 대 5, 일본 1 대 7처럼 국제 수준의 간호사 대비 환자비율을 법제화해 환자 보는 비율을 대폭 줄이고, 최악의 밤근무 교대제를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교대제로 개선하면서 주 4일제 노동시간단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신·육체·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의료기관 교대근무자들에게 주 4일제는 다른 산업의 주 5일제에 다름 아니다. 올해 보건의료노조 슬로건 공모에서 1등을 받은 작품이 “환자 보다 환자 된다! 주 4일제 도입하라!”이다.

간호인력 확충과 처우개선은 보호자 없는 병원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로 나아가야 한다. 하루 10만~15만원씩 월 300만~400만원, 연간 2조~4조원이나 되는 개인 간병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간호간병국가책임제로 나아가야 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사업은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지출 10억원당 43.3명 고용으로 전체 산업 대비 고용창출 효과는 3.7배나 된다. 이번 기회에 의료기관 전 직종 인력기준 등 환자안전을 위한 최소인력기준이 마련돼야 하고, 의사인력을 확충해 불법의료 근절과 지역·공공·필수 분야에 적정한 의사인력이 배치되도록 해야 한다.

노사관계발전 측면에서 올해 코로나 의제 중심의 보건의료노조 노정교섭·산별교섭 결과는 금속노조의 산업전환, 택배와 플랫폼노동 사회협약과 함께 정체상태에 있는 초기업 교섭의 새로운 가능성 모색에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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