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입장을 고수하는 더불어민주당에 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 5단체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법 개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할 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현업단체가 함께 언론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언론보도로 발생한 피해구제를 강화하는 균형점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윤창현(50·사진) 언론노조 위원장을 만나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와 대안에 대해 들었다. 윤창현 위원장은 “언론개혁, 적폐청산 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법안의 디테일을 살펴봐야 한다”며 “언론개혁 필요성과 ‘가짜뉴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부분에는 동의하지만 개정안이 결코 이를 풀 수 있는 답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언론중재법 처리 방향, 어떤 민주주의로 갈지 가늠하는 척도”

-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한국 사회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 확대라는 일관된 방향성으로 향해 왔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러한 흐름을 역행하는 행위다. 법안 내용도 문제지만 이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당이 보여준 행태도 문제적이다. 민주주의라는 그릇에 진보적 내용을 담을지, 보수적 내용을 담을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라고 본다. 이 법안의 처리 방향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할 것인지, 어떤 사회로 갈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처리했다. 지난달 27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지난 18일 안건조정위원회, 19일 문체위 전체회의에 이어 법안심사 전 과정에서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조작보도를 한 언론사에 손해액의 최대 5배를 징벌적으로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정보도와 함께 기사열람 차단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고위공직자와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및 그 주요주주, 임원 등은 언론사를 상대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

- 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떤 건 허위고, 어떤 건 조작이라는 것을 법률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2014년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했을 때 당시 박근혜 정권은 이를 ‘조작된 문건’이라고 했다. 현재 눈에 보이는, 드러난 파편적 진실만 가지고 이것이 허위·조작인지 아닌지 누구도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법으로 처벌하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는 거다. 말과 글에 대해 ‘조작이다, 아니다’라고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결국 그 제도를 장악하고 행사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

“소송 남발 우려 … 소 제기 순간 기자들 발 묶여”

- 언론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요건은 어떻게 보나.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요건이 3개로 줄었다.
“해당 요건은 전부 문제다. 법적 전제부터 잘못됐다. 징벌적 배상을 물리겠다고 하는 건 일반 손해배상보다 몇 배를 물리겠다는 거다. 그 정도로 벌을 무겁게 하려면 소송을 제기하는 쪽에서 입증해야 한다. 일반 손해배상보다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입증해야 논리적 정당성이 있는 거다. 그런데 징벌적 배상을 하면서 추정만 가지고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미 형법상 명예훼손죄·모욕죄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등 기존 법 체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한국은 언론에 대한 규제가 많은 나라 중 하나인데 여기에 하나를 더 얹겠다는 것으로 규제 총량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 법안이 통과됐을 때 실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열람차단 청구권 같은 조항은 사전 검열과 똑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곧 선거국면이 되면 검증보도가 쏟아질 텐데 정치인에게 불리한 정보가 보도되면 일단 기사열람 차단 청구를 할 거다. 언론중재위원회 판단에 따라 인용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알아야 할 정보들이 차단되게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과 별개로 소송을 건 순간 기자들의 발이 묶이게 된다. 1보가 나가고 후속보도를 해야 하는데 소송이 들어오면 게이트키핑을 넘어선 위로부터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소송이 남발되면 언론 본연의 기능인 권력감시·비판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 여당에선 손배 청구가 가능한 대상에서 공직자 등을 제외했고, 면책규정을 근거로 남용 가능성이 과도한 우려라고 한다.
“공직자는 제외되지만 구멍이 많다. 특히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기업’ 기준은 자산규모 10조원 이상부터 속한다. 10조원 기업은 감시 대상이고 9.9조원 기업은 감시 대상이 아니게 되는 셈이다. 산업재해가 벌어지는 현장들이나 노동자를 벌레 취급하는 기업주들이 대기업뿐인가.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5명 미만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면책조항은 안 걸려도 될 소송을 제기하고 이로 인해 위축효과가 생기는 문제까지 막지는 못한다. 언론중재법의 기본 취지는 빠른 피해구제를 위해 법정 다툼으로 가지 말고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자는 거다. 그런데 개정안은 중재보다 소송의 효과를 키우기 때문에 이러한 취지를 무력화할 것이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자율규제기구로 저널리즘 해답 논의하자”

- 언론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가짜뉴스를 때려잡자’는 구호는 속이 시원하고 귀가 솔깃하게 만든다. 가짜뉴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개정안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올바른 방안인지는 ‘엑스(X)’라는 거다. 언론노조를 비롯해 현업 5단체(방송기자연합회·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한국PD연합회)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위원회’와 ‘저널리즘윤리위원회(가칭)’를 제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위원회(가칭)는 언론중재법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법, 신문법 등 언론 자유를 제약할 우려가 있는 법안을 대상으로 정치권과 언론사, 시민사회가 모여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논의하자는 거다. 사회적 합의와 별개로 저널리즘의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책무는 우리에게 있다. 저널리즘윤리위원회를 통해 저질 허위정보가 유통되는 현상에 대해 언론계 스스로 규제하고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틀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 언론의 자정능력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많다.
“언론계 내부적으로 문제 있는 곳이 많은 것은 맞다. 그런데 언론중재위 위원장을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등 언론 심의 내지는 언론중재 기능을 담당하는 역할이 권력에 주어져 있다. 이런 구조가 모든 논란을 정치적으로 끌고가고 있다고 본다. 자율규제기구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완전히 대체해 나가야 한다.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 플랫폼사업자까지 포괄하는 틀을 통해 오히려 지금 현재의 법적 규제보다 더 강력한 제재방식들을 강구해 나가야 저널리즘이 봉착한 문제에 답이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 여당 강행처리 이후 대응계획은.
“대선후보들에게 입장을 물어볼 거다. 법률안 폐지 및 전면 재개정, 사회적 합의에 동의하지 않으면 노조가 규탄을 넘어선 어떤 행동도 할 수밖에 없다. 평생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 언론계 원로, 해고와 징계를 무릅쓰고 크고 작은 권력에 맞서 싸운 언론노동자, 미디어의 미래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력해 온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반대할 때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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