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발행하는 인터넷매체 ‘IPS’(국제정치사회) 8월20일자에 실린 아프간 전문가 엠란 페로즈(Emran Feroz)와의 인터뷰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갑자기 차지했는데.
“탈레반은 갑자기 카불을 점령한 게 아니다. 몇 해 전부터 인근 지역을 둘러싸고 있었다. 탈레반이 판단하기에 가장 적절한 순간에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고, 그 결과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장악 속도가 그렇게 빠를지는 예상 못했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 서방이 훈련시키고 무장시킨 정부군이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는데.
“지난 20년 동안 미국과 서방이 건설한 아프간 정부와 보안군은 대단히 부패한 세력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부문이 부패했다. 고위 관료와 군대 장교는 엄청난 돈을 주머니에 챙겼다. 하지만 일선 병사들은 최저 수준의 수입도 보장받지 못했다. 군대 상층부는 기름진 생활을 했지만, 하층 병사들은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마실 물조차 보급되지 않아 계곡물을 떠먹어야 했다. 고위 장교들은 궁전 같은 집에 살면서 두바이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도 모자라 사설경비업체까지 운영하고 있다. 사병들은 빈곤층이 대부분이고, 총알받이로 활용됐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정치 엘리트는 없다. 그들은 자식들을 해외로 보냈다. 이런 상태는 오래 갈 수 없다. 군인들은 사기를 잃었고, 카불의 부패한 엘리트를 위해 싸우기를 원치 않았다.”

- 지난 20년 동안 달라질 수는 없었을까.
“가장 근본적인 실수는 이미 20년 전에 발생했다. 서방 군대가 잔인한 군벌들과 마약으로 돈을 번 부호, 그리고 탈레반과 싸우는 데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세력들과 동맹을 맺은 것이다. 이들은 잔인함과 여성혐오에서 탈레반과 다를 게 없다. 사실 이들의 문제 때문에 1990년대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평화협상과 국가재건 과정에 군벌과 마약상들은 포함됐는데 탈레반은 배제됐다. 만약 탈레반이 협상과 재건 과정에 포함됐다면, 이 전쟁은 일찍 끝났을 것이다.”

- 미국은 탈레반과 협상을 해 왔는데, 탈레반 정권과 정상적인 관계가 가능할까.
“지역 수준에서는 곧 탈레반과의 관계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다. 중국·러시아·이란·파키스탄, 그리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오랫동안 탈레반과 협상을 해 왔다. 최근 몇 해 동안 탈레반은 이들 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어 왔다.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들은 탈레반 정부를 신속하게 인정할 것이다. 문제는 서방과의 관계다. 이미 미국도 탈레반과 협상을 하고 있는데, 계속할 게 분명하다.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연합도 아프간 난민을 되돌려 보내기 위해 탈레반과 협상할 것이다. 미국과 서방은 시체 위를 걸어 다니며 교섭 정책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중국은 탈레반에게 우호적인 관계를 제안하면서 재건 과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곧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탈레반은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왔다.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은 현실정치(realpolitik)로 정당화되고 무시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탈레반과 가까운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아프가니스탄이 위구르족의 피난처가 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 또한 극단주의자들이 중국에 위협 요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 지금 아프간 민중들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안정이 보장되고 평화와 고요가 온다면 설사 탈레반이 권력을 잡더라도 도시 빈곤층과 시골 사람들은 환영할 것이다. 특히 (미군과 정부군의) 폭격과 군사작전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데 안도감을 가질 것이다. 카불의 내 친구는 ‘한 주 내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지난 40년 동안 가장 평화로운 한 주가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공포 정치를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탈레반 정권하에서 안전했다고 기억한다.

서방과 아프간의 특권층은 보편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대다수 아프간 민중에겐 아주 먼 이야기다. 민중들에겐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밖에 나가 돌아다녀도 양아치들에게 시달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도시 범죄율은 대단히 높았다. 많은 이들이 (미국과 서방을 등에 업은) 정부가 실패했다고 느끼면서 탈레반이 자신들을 보호해 주길 바랐다. 물론 도시의 여성들은 탈레반 정권을 두려워한다. 탈레반이 교육과 취업에서 여성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등 여러 약속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것은 시간이 흘러야 증명되는 것들이다.”

-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 알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들이 다시 몰려들지 않을까.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알카에다의 망은 아프가니스탄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걸쳐 있다. 이미 탈레반은 테러리스트를 돕지 않겠다고 미국과 합의했다. 물론 종교적으로 ‘성령충만(leap of faith)’으로 비약하면서 현실을 무시할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 지난해 IS(이슬람국가) 유격대를 상대로 미군은 공중폭격을 하고 탈레반은 지상공격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일부 관찰자들은 탈레반을 ‘미국의 지상군’으로 부르기도 했다. 만약 IS가 서방에 위협이 된다면, IS를 치기 위해 서방은 탈레반과 손잡을 것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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