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이 23일로 끝난다. 노동계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행령안이 모법의 취지에 역행한다고 비판한다. 시행령은 입법 취지를 살릴 수도, 흔들 수도 있다. 어렵게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

경영책임자 의무, 인력·예산 확보 반드시 포함해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어렵게 법이 제정되고 시행령에서 휴지조각이 되는 전례를 우리는 수 차례 봐 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5명 미만 적용제외 등으로 반쪽짜리 법으로 지탄받는다.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시행령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

첫째, 입법예고된 시행령은 경영책임자가 취해야 할 조치에 2인1조 근무, 과로사 예방을 위한 인력 확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도급·용역·위탁하는 경우에도 ‘적정한 안전·보건관리 비용과 수행기간’을 확인·점검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적정한 인력과 예산 보장이야말로 경영책임자의 권한이며, 반드시 의무로 명시돼야 한다.

둘째, 경영책임자가 준수해야 할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근로기준법 등이 명시되고 점검업무를 민간위탁하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과 특수고용 노동자도 적용되므로, 9개 특수고용직만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실질처벌이 불가능하다. 매년 520명이 넘는 과로사에 대한 처벌도 불가능하다. 법정 노동시간 위반과 일터 괴롭힘 등이 명시된 근로기준법, 청소노동자의 주간작업과 3인1조가 명시된 폐기물 관리법 등의 법령이 명시돼야 한다. 입법예고된 시행령에서는 법령 준수에 대한 점검을 하고, 경영책임자가 보고를 받고, 예산과 인력을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첫 번째 단계인 점검을 민간위탁할 수 있게 했다. 민간위탁 업체가 기업과 유착하거나 부실점검 뒤 허위보고를 하면 경영책임자는 모든 의무에서 빠져나가고,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셋째, 유해요인 점검과 종사자 의견수렴 의무에서 노동자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경영책임자의 의무로 유해요인 점검은 위험성평가로 갈음할 수 있고, 종사자 의견수렴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건설업안전보건협의체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는 주요한 기재다. 그러나 현재의 형식적인 제도운영으로는 경영책임자의 면책조항으로만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동일한 처벌이 적용되는 시민재해의 경우 질병의 종류를 특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으로 제시한 직업성 질병으로는 단 한 건의 적용대상도 없게 된다. 이미 1년, 3명 이상, 동일유해요인으로 법에서 한정하고 있는 직업성 질병을 급성중독으로 한정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모든 직업성 질병이 적용돼야 한다.

 

시행령안 보완 불가피, 보완입법도 연내 추진해야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 발생시 경영책임자를 매우 엄한 형벌에 처하는 법률이다. 때문에 형사처벌의 구성요건이 되는 경영책임자 의무는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며 명확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안을 보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지켜야 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대로 법이 시행될 경우 실질적인 예방효과는 거의 없이 억울한 범죄자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시행령안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직업성 질병의 중증도 기준 부재다. 급성중독으로 발생한 질병이라도 수일 내 치료나 회복이 가능한 사례가 산업현장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까지 중대산업재해로 간주하고,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법제정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부상자 및 시민재해 규정과의 정합을 고려한 질병자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중대산업재해와 시민재해 모두 경영책임자의 의무내용이 포괄적이고 불명확한 것이 문제다. 안전·보건 인력과 시설을 갖추기 위한 적정한 예산의 판단기준이 무엇인지,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할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 매우 혼란스럽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보호대상을 종사자로 규정했는데, 원청의 입장에서 어느 범위까지 하청을 관리해야 법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되는지도 논란이다. 그간 경영계에서 경영책임자 의무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요구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법이 시행되는 내년 1월27일까지 경영책임자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의 시행령 입법이 지연돼 경영책임자 의무를 수개월 내에 완벽히 준수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 잘 안착해 사고예방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법규를 잘 준수하도록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규모 사업장의 상황을 고려한 시행 시기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 개정 없이는 포괄적이고 모호한 경영책임자 의무와 과도한 처벌 문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하다. 시행령도 산업계 의견을 반영해 최대한 합리적으로 제정해야 하며, 중대재해처벌법도 빠른 시일 내 정부가 재개정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부 입법예고안, 모법 무력화 가능성 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

▲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
▲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정부가 입법예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모법을 무력화하는 법안에 그칠 공산이 크다. 경영계가 건의한 내용만 반영돼 법인과 경영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모법에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의무를 부여했다. 그런데 입법예고안에는 ‘인력과 예산’을 의무에서 제외했다. 적정인력을 통해 과로를 방지하고 위험작업에 2인1조 작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를 정부가 시행령에서 빼 버린 것이다.

이것 외에도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직업성 질병에 급성중독 및 급성중독에 준하는 질병만 포함해 업무상 질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진폐, 난청,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은 제외했다. 경영진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 이행·평가·개선 내용은 빠졌다. 시행령의 핵심 내용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협소하고 자의적으로 규정해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규정된 기존 안전보건 의무규정과 차이가 거의 없다. 중대재해 발생 법인 경영책임자에 대한 안전보건교육을 200시간 이내로 설정해 산재예방 의무주체로서 그 역할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인 데다가, 토론이 배제된 일방적 교육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실효성이 매우 낮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대재해 2회 이상 발생한 법인에 가중교육을 하는 내용도 없고, 50명 미만 사업장을 기준으로 과태료 차등을 둬 제도의 실효성을 낮출 우려가 상존해 있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을 공표하는 기간도 문제다 입법예고안은 형 확정 후 1년간 게시하게 돼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중대재해 경각심을 높이고 산재예방 불량기업을 국민이 인식하게끔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한국노총은 입법예고 기간 만료 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정부에 제출할 것이다. 정부가 부디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점검업무 민간위탁, 경영책임자 면죄부
손익찬 변호사(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준))

손익찬 변호사(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준))
▲ 손익찬 변호사(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준))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내용을 정한 법률 4조1항1호에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시행령에서 구체화하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시행령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라고 해 법률에서 정한 경영책임자의 의무범위가 시행령에서 더 좁혀졌다. 이는 대의기관인 국회가 무시당한 것이다. 법률만 놓고 보면 ‘재해예방에 2인1조 작업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인력 및 예산을 배정’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되나, 시행령안은 이러한 의무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 법은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종사자”란 근로자, 계약의 형식에 관계 없이 노무를 제공하는 자(‘특고노동자’보다도 범위가 넓다), 여러차례 도급이 있는 경우 그 수급인과 수급인의 근로자와 노무제공자를 모두 포함한다. 달리 말하면 도급인은 자신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한 ‘노무제공자’나, 다단계 수급인의 ‘근로자’와 ‘노무제공자’ 모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다만 시행령안 4조8호만 “종사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므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4조 각호 전체에서 “종사자”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법률 4조1항4호에서는 경영책임자 등은 안전보건법령의 준수를 위해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정한다. 그런데 시행령안 5조2항은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장에서 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보고받으며, 보고받은 범위 내에서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정하면서 점검이 위탁 가능하다고 정했다. 보고받은 범위에 한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고 조건절을 붙일 경우, 점검내용이 부실하더라도 그 내용에 따르기만 하면 실제로 법위반 사항이 있더라도 면책된다고 해석될 위험이 있다. 아울러 점검의 외부위탁이 가능해짐으로써, 돈을 주는 사람의 입맛에 따른 ‘부실점검’ 우려가 실재화될 수 있다.

이 시행령안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중대산업재해 관련 경영책임자 의무에 관한 내용과, 중대시민재해에서 경영책임자 의무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조문을 거의 베껴 쓰다 보니, 중대시민재해 방지를 위해 경영책임자가 무슨 의무를 지는지 설명이 모호한 부분이 많다. 국토교통부 등 유관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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