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협약이란 국제노동기구(ILO)가 만드는 국제 노동기준으로 국제적으로 적용되는 노동법, 즉 국제노동법이다. 1919년 가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ILO의 창립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공업에서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을 규정한 ‘일의 시간(hours of work)’에 관한 1호 협약을 채택했다. 이후 지난 100년 동안 ILO는 노사정 3자 합의를 통해 모두 190개의 협약을 채택했다. 이들 190개 협약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눠진다.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8개), 우선협약(Priority Conventions, 4개), 기술협약(Technical Conventions, 178개)이 그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법이고, ILO가 만든 협약들도 시대 변화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ILO는 정기적으로 협약들의 상태를 평가하여 최신(up-to-date), 잠정(interim status), 개정 필요(to be revised), 구식(outdated), 폐지(abrogated), 철회(withdrawn) 등으로 협약들의 지위를 분류한다. 이러한 작업을 거쳐 ILO는 187개 회원국 정부가 제도와 정책에 반영해야 할 협약으로 ‘최신’과 ‘잠정’ 지위를 가진 것들을 중심으로 70여개를 골라 놓았다. 그 중 ‘일하는 시간(working time)’과 관련해 ILO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협약은 모두 8개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공업에서의 하루 8시간·주 48시간’에 관한 1호 협약이 만들어졌다. ILO의 187개 회원국 가운데 1호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52개국에 달한다. 1930년 공업에만 적용되던 ‘하루 8시간·주 48시간’을 상업과 사무직에 확대·적용하는 기준을 만들었다. 30호 ‘일의 시간(상업 및 사무실) 협약’이 그것이다. 이 협약은 30개국이 비준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는 공업과 상업에서 ‘하루 8시간·주 48시간’을 규정한 두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주 40시간’을 규정한 47호 협약을 이명박 정권 때인 2011년 11월7일 비준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이명박·국무총리 김황식·외교통상부 장관 김성환에 의해 2012년 10월 22일 “(대한민국)조약 제2110호”로 공포된 협약의 공식 한국어 제목은 “주 40시간으로의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협약”이다. 47호 협약을 비준한 ILO 회원국은 1호와 30호 협약의 비준국 수에 한참 모자란 15개국에 불과하다.

47호 협약에 따르면 비준국 정부는 “생활 수준이 결과적으로 저하되지 않는 방식으로 적용되는 주 40시간 원칙에 대한 승인을 선포하고” 나아가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절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조치의 시행이나 촉진을 찬성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비준국은 “회원국이 비준한 다른 협약들에 규정된 세부 조항들에 따라 주 40시간 원칙을 다양한 종류의 고용에 적용할” 의무도 지닌다.

2012년 10월 주 40시간 협약은 국회를 통한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만을 거쳐 그대로 비준되었다. 입법이 완료돼야 비준이 가능하다는 ‘선 입법 후 비준’ 논리에 따르면, 당시 대한민국의 법령과 정책과 관행은 47호

 협약을 실행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비준 이후 “주 40시간 원칙에 대한 승인을 선포하고, 주 40시간 원칙을 실현하는 조치를 촉진해” 왔어야 했다. 또한 “주 40시간 원칙을 다양한 종류의 고용에 적용해” 왔어야 했다.

하지만 비준 따로, 법령 따로, 현실 따로인 대한민국에서 ‘주 40시간 원칙’을 실현하고 적용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주 68시간이 합법이고, 주 52시간을 법정 기준으로 선전하고 있다. 설사가상으로 주 120시간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배설’되는 형국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현행의 법령과 정책과 관행에서 ‘주 40시간 원칙’을 규정한 47호 협약은 어떻게 “승인”되는 것일까. 그리고 ‘주 40시간 원칙’은 “다양한 종류의 고용”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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