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촛불집회의 발단은 박근혜, 최순실이었다. 권력을 남용하고 거액의 뇌물을 받은 죄가 컸다. 그들에게 뇌물을 준 사람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대법원이 확정한 뇌물액수는 무려 86억원이다. 사비가 아니라 삼성의 돈이었으므로 횡령죄도 적용됐다. 그런데 이재용이 가석방 결정됐다.

▲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들은 오늘도 너나 할 것 없이 또 ‘촛불혁명의 완수’를 말하며 표를 달라한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국가경제’와 ‘사회감정’을 고려해서 이재용 가석방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당시 재벌개혁을 크게 외쳤다. 현 정부여당은 야당이던 이명박 정권 당시 이건희 원포인트 사면을 강력히 비난했었다. 재벌개혁은 실패했다. 애초에 시도조차 없었다.

이재용을 감옥으로 보낸 것은 오로지 촛불의 힘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촛불집회 초기에는 탄핵에 반대하거나 말을 아꼈었다. 그들은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마지못해 편승하더니 양당구도에서 정권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재용을 가석방함으로써, 자신들은 재벌개혁을 위해 지금껏 해놓은 게 없음을 고백했고 삼성의 품에 뛰어가 안겼다. 그들은 여전히 대선국면에서 재벌로부터 해코지 당할까 겁이 난다.

이재용이 감옥에 가도 삼성주가가 급등하고 매출이 늘어났다. 정부여당은 경제가 걱정되는 게 아니고 투명한 기업지배구조가 자리잡을까봐 불안한 게 아닐까. 적폐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조폭 우두머리와 같은 재벌 몇 명을 세워놓고 핫라인으로 직접 소통하면서 직접 주고받는 게 더 편리하기 때문에.

이재용 가석방을 마주하며 더불어민주당에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또 한편으로는 이재용이라도 풀어주면 코로나 시기 궁핍한 민생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는 국민도 많다. 그 두 부류 외에 이재용에게 동질감을 느껴 가석방을 염원한 사람은 소수의 자본가 또는 재벌들 정도겠다.

결국 보편적 국민감정은 위 두 부류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 두 부류 국민감정은 모두 문제다. 전자는 더불어민주당이 사기꾼이 되기 때문에 문제다. 후자는 더불어민주당이 민생에 기여한 게 없고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다는 증명이므로 문제다. 결국 어느 모로 보나 이재용 가석방은 정부여당이 명분과 실력 모두에서 총체적으로 파산했음을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화란 무엇인가.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독재 군인과 그 후예인 ‘무신’ 건달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자존심 강한 ‘문신’ 귀족 엘리트들이 자본주의 국가를 접수해나간 과정이 아닌가 한다. 작금의 87년 체제다. 문신 귀족들은 집권과정에서는 민중과 함께 했지만 문신 정권이 된 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반론을 펼치려면 결과로 입증해야 할 텐데 현실은 빈부 양극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악수준, 자살률 부동의 세계 1위, 부동산 지옥이다. 이전 정권 탓이 아니다. 이 정권에서 더 악화되었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진실이다. 민주화 과정에서의 고단함과 결과의 우수함을 인정하지만 민주당의 지금 상태는 그들이 경멸하는 ‘무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한 귀족이다. 통치방식을 부드럽게 바꿨을 뿐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잘 계승하고 있다. 약육강식, 승자독식, 유전무죄, 내로남불이라는 이치 말이다. 부드러운 방식이 더 효과적이고 장기 지속가능한 법이다.

이재용 가석방 과정을 살펴보자. 이명박이 이건희에게 한 원포인트 사면과 다름없이 특혜와 편법의 연속이다.

첫째, 가석방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형기의 80%를 복역해야하지만 법무부가 올해 4월 그 기준을 60%로 완화했다. 이재용은 전체 2년 6개월형 중 정확히 60%에 해당하는 1년 6개월을 채우자마자 이번에 가석방 허가를 받았다. 8.15 가석방 시기에 형기의 60%를 채우게 되는 이재용을 풀어주기 위해 가석방 기준을 60%로 맞춰서 완화한 것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둘째, 가석방 업무지침 20조에 따르면, 교정시설의 장(소장)은 예비심사대상자에 대해 수사·재판 중인 사건이 있는 경우 법원, 검찰 등 관련 기관의 의견을 조회해 예비심사에 반영해야 한다. 서울구치소장은 이러한 절차 없이 예비심사에서 이재용을 통과시켰다. 후에 절차적 하자가 문제 되자, 법무부는 부랴부랴 법원과 검찰에 의견 조회를 실시했다.

셋째, 가석방은 수형자가 반성하면서 성실하게 형을 수행하는 경우 사회에 조기 복귀시키는 제도다. 형기 중 일부를 이행했다고 원칙적으로 가석방을 검토하는 게 아니라 생계형 범죄, 사회초년생의 초범 등 개전의 정이 상당하고 진실한 반성이 있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 적용하는 것이다. 중대범죄자, 사회적 법익을 훼손한 자에게는 특히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사회복귀보다 일반적 예방효과(일벌백계) 및 구체적 예방효과(재범방지)가 강력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용은 불법경영승계를 위해 천문학적인 회사 돈을 횡령하여 박근혜, 최순실 국기문란 범죄자들에게 뇌물로 갖다 바친 자다. 그런데 가석방 심사대상 복역 기준(4달 전 졸속으로 줄여준 기준)을 채웠다는 점, 성실하게 복역했다는 자의적인 판단, 심지어 ‘국가경제’와 ‘사회감정’이라는 초법적인 사정을 들어 풀어줬다. 특혜 중의 특혜다.

이재용은 감옥에 갇히는 순간 삼성의 대표를 넘어 재벌의 대표가 됐다. 재벌들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라는 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 정권은 이재용 사건을 재벌개혁의 초석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석방이라는 뇌물을 만들어서 재벌에게 아첨하는 것으로 활용했다.

8월13일 이재용이 출소하는 장면은 생중계가 될 것인데 방송사는 자막에 ‘왕위 수여식’이라고 써 주면 좋겠다. 법무부 장관이 버선발로 달려가 꽃을 걸어 주는 장면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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