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준형 공인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대상판결 : 대법원 2021. 7. 8. 선고 2020다296321 판결

1. 사건 개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등록을 마친 피고(B)는 F로부터 설비공사를 도급받았다. 이에 피고(B)는 건설업을 영위함에 있어 건설산업기본법 또는 다른 법률에 따라 등록을 하지 않고 면허 없이 건설업을 영위한 C에게 판넬공사를 하도급해 건설산업기본법을 위반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원고는 2017. 3. 8.부터 2017. 9. 18.까지 C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위 공사현장에서 근무했다.

원고는 2017년 7~8월분 임금 중 일부를 C로부터 지급받지 못해 피고(B) 대표이사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피고를 상대로 임금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법원에 제기했다. 피고(B)는 2017. 4.부터 2017. 8. 17.까지 원고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2. 쟁점과 판결 요지

가. 쟁점

2차례 이상 건설산업기본법 2조 11호에 따른 도급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건설사업자가 아닌 하수급인이 그가 사용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 근기법 44조의2에 따라 그 직상 수급인이 하수급인과 연대해 부담하는 임금지급책임이 무과실책임에 해당하는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

나. 당사자의 주장

피고는 비록 건설산업기본법 등에 따라 등록하지 않은 C에게 하도급했어도 C에게 하도급금을 모두 지급했으므로, 원고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원고는 근기법 44조와 달리 44조의2 1항은 직상 수급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임금지급책임을 부담시키므로, 설사 피고가 C에게 하도급금을 모두 지급했어도 피고에게는 원고의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 판결 요지

1심 판결(제주지방법원 2020. 2. 21. 선고 2018가소77803 판결)은 종전에 법령에 따라 불법 하도급으로 건설 일용근로자의 임금체불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건설업 하도급 관계에서 발생하는 임금지급 방식으로 개선함으로써 건설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근기법 44조의2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건설업자가 아닌 자에게 하도급을 준 직상 수급인은 그와 같은 하도급 형태를 이용하는 이익을 누리는 대신, 그 하수급인에게 고용된 건설 일용근로자의 임금을 실질적으로 지급해야 할 위험을 부담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와 같은 책임은 근기법상 무과실의 법정연대책임에 해당한다며 원고 청구를 인용했다.

대법원에서도 근기법 44조2가 건설공사를 위한 자금력 등이 확인되지 않은 건설업 미등록자에게 직상 수급인이 건설공사를 하도급 하는 위법행위를 함으로써 하수급인의 임금지급의무 불이행에 관한 추상적 위험을 야기한 잘못에 대해, 실제로 하수급인이 임금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이런 위험이 현실화됐을 때 그 책임을 직상 수급인에게 묻는 취지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근기법 44조의2 적용을 받는 직상 수급인은 같은법 44조와 달리 자신에게 직접적인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하수급인의 임금 미지급으로 말미암아 위와 같은 책임을 부담하고, 결국 건설업에서 2차례 이상 도급이 이뤄지고 건설사업자가 아닌 하수급인이 그가 사용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면, 그 하수급인의 직상 수급인은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 여부 또는 하수급인에게 대금을 지급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하수급인과 연대해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할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한 것이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8도9012 판결 등 참조).

비록 원고가 피고의 대표이사를 노동부에 신고한 형사사건에서 근기법 위반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있었지만, 이는 형사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며, 이와 같은 사정이 민사상 임금지급의무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원고가 C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직상 수급인 지위에 있는 피고에게 근기법 44조의2에 따른 무과실의 임금지급책임을 인정했다.

3. 평가

건설업 다단계 하도급구조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8. 1. 28. 시행된 근기법 44조의2는 건설업자가 아닌 하수급인이 그가 사용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면, 그 하수급인의 직상 수급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 여부 또는 하수급인에게 대금을 지급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하수급인과 연대해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할 책임을 부담하도록 책임을 지우고 있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8도9012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은 입법취지 등을 고려할 때 근기법 44조의2는 개인의 의사에 의해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없는 강행규정이다(대법원 2021. 6. 10. 선고 2021다217370 판결).

이러한 직상 수급인의 임금지급책임은 건설업 등록이 돼 있지 않아 건설공사를 위한 자금력 등이 확인되지 않는 자에게 건설공사를 하도급하는 위법행위를 함으로써 하수급인의 임금지급의무 불이행에 관한 추상적 위험을 야기한 잘못에 대해, 실제로 하수급인이 임금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그러한 위험이 현실화됐을 때 그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근기법 44조의2 규정이 헌법상 자기책임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헌법재판소 2014. 4. 24. 2013헌가12).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헌법재판소 결정과 기존 대법원의 판례 법리를 재확인하며 불법 하도급 구조에서 하수급인 소속 근로자의 임금체불에 대해 직상 수급인에게 무과실 임금지급책임을 인정했다. 직상 수급인이 하수급인에게 공사대금을 지급했거나 직접적인 귀책사유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불법 하도급 구조를 생산시킴으로써 임금체불의 위험을 발생시켰으므로 책임이 있다고 봐 직상 수급인에게 무과실의 임금지급의무를 인정한 것이다.

불법 하도급 구조에서 건설근로자의 임금체불을 근절하기 위한 국회와 대법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인 검찰은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검찰은 불법 하도급 구조를 생산함으로써 하수급인의 임금지급의무 불이행에 대한 위험을 야기한 직상 수급인(피고)에게 ‘임금 체불에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해 하수급인 소속 근로자는 신속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 심지어 피고는 출력일보를 통해 원고의 임금을 직접 관리하고, 2017. 4.부터 2017. 8. 17.까지 원고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하기까지 했는데, 고의가 없다는 검찰의 처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부디 대상판결과 근기법 44조의2 입법취지를 수사기관에서 적극 고려해 건설근로자의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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