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학교부터 노동교육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 <민주노총 유튜브 갈무리>

“인터넷 강의를 100% 이수해야 한다고 해서 3학년 1학기 때 노동인권교육을 받았어요. 그냥 틀어 놓고 화면을 넘기기만 하면 되더라고요. 시험도 대충 찍으면 맞을 수 있는 정도의 문제였어요. 무슨 내용인지도 몰라요.”

대전의 한 직업계고에서 조리를 전공한 학생 A씨는 학교에서 받은 노동·인권교육에 대해 “‘이수하지 않으면 취업을 못한다’고 해 억지로 들은 것”이라고 회상했다.

교육 현장 실태와 달리, 청소년들은 노동교육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지난해 광주시교육청이 발표한 ‘청소년 노동인권 의식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역 청소년 3천289명 중 90.1%는 “(학교 내)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중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263명의 절반 가까이(49.8%)가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인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었다. 인권침해에 대응한 청소년 93명 중 35.5%(복수응답)는 해결 방법을 알지만 참고 계속 일했다. 해결 방법을 모르는 이도 17.2%였다.

광주시교육청은 “조사 결과, 노동인권교육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경험이 없는 응답자에 비해 파업의 정당성과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더 크게 인지한다”며 “노동인권교육이 교내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규교과과정으로 편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조와 노동, 한국에서 멸시와 혐오 대상”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노동교육이 비민주적 일터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민주노총과 162개 단체가 함께하는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와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학교부터 노동교육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한국학)는 “노동자가 파업하면 한국의 보수언론은 ‘시민의 발목을 잡는다’며 노동자와 시민을 분리하고, 청소년들은 노동자에 대해 ‘노예, 천민’을 떠올린다는 실태조사결과도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노조뿐 아니라 노동과 노동자는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라고 진단했다. 노동자는 이러한 사회에서 자괴감을 느끼거나 자기 존재에 대해 부정적 의식을 갖게 된다.

박 교수는 “학생 대다수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모르고, 이것이 권리로 보장돼 있다는 의식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현재의 교육은 반노동사회를 만들어 가는 교육”이라며 “노동이 보이지 않는 교육은 직장 갑질과 산재 피해가 판치는 헬조선 직장문화의 원인 중 하나로, 노동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이러한 직장문화 극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주명 한신대 교수(일본학)는 “지금이 노동교육을 정규교육과정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적기”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14개 시·도에서 혁신교육감이 진보적 교육정책을 펴고 있는 지금이 민주시민교육과 노동교육을 펼 시기”라며 “촛불혁명 이후 공공성과 평등성의 가치가 강조되는 지금 시기에 교육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주권자 시민으로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과정 총론에 노동교육 반영해야”

운동본부는 ‘2022 국가 개정교육과정’ 총론에 노동인권교육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은 내년에 발표된다. 총론은 초·중·고교 교육의 목표와 방법·내용·평가의 기준이 된다.

장윤호 이천제일고 교사는 “시·도교육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노동인권교육 학습자료와 정규교육과정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의 질은 차이가 크다”며 “적어도 중등직업학교에서는 필수교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과서가 개발되고, 이를 인문계 학교에서는 선택과목화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사장은 “노동교육이 거의 없었던 학교 현장에 조례로 교육이 의무화된 것은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이지만 1년에 1~2시간의 교육으로는 제대로 된 노동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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