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로코 항만노동자들이 국제운수노련(ITF)이 조직한 세계 항만노동자 행동의 날에 참가하고 있다. ITF

평택항에서 일하다 숨진 고 이선호씨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항만안전특별법 제정안이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항만 산업안전 체계가 대폭 강화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7일에는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7일자 해양수산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8일 엄기두 해양수산부 차관은 영상회의를 열어 한국항만물류협회 및 CJ대한통운과 ㈜동방을 포함한 주요 하역회사, 한국해운협회 부회장 등과 ‘항만안전특별법’ 제정에 따른 준비·협조사항에 대해 논의했다.

항만안전특별법은 △항만사업장별 자체 안전관리계획 수립과 항만안전점검관 도입 △항만별 노·사·정이 참여하는 항만안전협의체 구성 △항만하역사업자의 자체 안전관리계획 수립과 이에 대한 관리청 승인을 뼈대로 한다.

26일자 <매일노동뉴스>는 “특별법에 따라 하역사 안전관리계획 이행 점검은 해양수산청에 신설되는 항만안전검검관이 맡는다. 항만은 출입이 쉽지 않은 등의 현장 특성으로 고용노동부 감독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면서 앞으로 효과적인 안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해수부와 노동부가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항만노동자(dock workers)를 위한 기준을 만들어 두고 있다. 137호 항만근무 협약과 152호 직업안전보건(항만근무) 협약이다. 1973년 채택된 137호 협약은 회원국 정부의 정책이 항만노동자에게 “정규직 고용(permanent or regular employment)”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2조1항). 또한 직업 범주에 상관없이 모든 항만노동자를 등록해 그 명부를 보관하고(3조1항), 등록된 항만노동자들을 우선해 항만작업에 채용해야 한다(3조2항). 그리고 회원국은 안전과 보건과 복지, 그리고 직업훈련을 항만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한다(6조).

1979년 채택된 152호 협약은 항만노동자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장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사고와 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정보·훈련·감독을 제공하고 △개인보호장구를 제공하며 △적절한 응급처치와 구조 시설을 제공·유지하며 △비상상황에 대비한 적절한 절차를 개발하고 수립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52호 협약의 적용 대상은 항만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이다(3조a). 항만노동자는 안전한 장비 통제와 근무 방식을 위한 논의에 참여하고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무 절차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가진다(6b).

ILO 187개 회원국 중에서 137호 항만근무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25개국이다. 152호 직업안전보건(항만근무)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27개국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두 협약 다 비준하지 않았다. 주요국 가운데 137호를 비준한 나라로는 호주·브라질·쿠바·이집트·핀란드·프랑스·이탈리아·노르웨이·포르투갈·러시아·스페인·스웨덴 등이 있다. 152호를 비준한 나라로는 브라질·덴마크·핀란드·프랑스·독일·이탈리아·멕시코·네덜란드·노르웨이·러시아·스페인·스웨덴·터키 등이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1년 울산대를 연구기관으로 해 ‘ILO 산업안전보건 관련 협약 비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연구보고서는 “바로 비준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협약과 의정서”로 13호 백연(도장) 협약, 120호 위생(상업과 사무실) 협약, 184호 농업안전보건 협약, 21호 산업재해급여 협약, 1981년 산업안전보건 협약 의정서 155호 5개를 꼽았다.

그리고 “당장은 어려우나 시간을 가지고 국내 법령을 보완하면 비준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협약”으로 152호 직업안전보건(항만근무) 협약, 148호 근무환경(공기오염, 소음 및 진동) 협약, 171호 야간근무 협약, 174호 중대산업사고예방 협약 4개를 지목했다.

노동부의 용역보고서가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당시 당장 비준이 가능하다고 한 5개 협약과 국내 법령을 보완하면 비준이 가능하다고 본 4개 협약 가운데 지금까지 비준된 것은 하나도 없다.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해 정부 관료들은 ‘선 입법, 후 비준’ 입장을 내세우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비준한 32개 협약 가운데 입법을 제대로 마치고 비준한 협약은 단 1개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준과 관련해 100%로 완벽한 ‘선 입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정부 관료들도 인정한다.

젊은 항만노동자 이선호의 죽음을 계기로 항만안전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이제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 법의 내용이 152호 직업안전보건(항만근무) 협약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할 때다. 동시에 정부는 152호 협약 비준을 위한 실무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여당은 기본협약 3개(29·87·98호)를 비준한 것에 만족해선 안 된다. 1년도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더 많은 협약을 비준해야 하고, 또 비준할 수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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