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태 ㈔함께하는 아시아생명연대 대표(목사)

싸워야 하는 싸움

“아빠, 우리가 이길 건가요?”

“아니”

“그러면 왜?”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온 모든 것이 꼭 이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단다.”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한 장면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초기 미국 상황에서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순박한 흑인 청년을 애티커스 변호사가 변호를 맡게 된다. 그러자 마을의 모든 백인이 애티커스 변호사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 애티커스의 어린 딸 스카웃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이길 수 있느냐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예감하고 있다. 그 흑인 청년의 결백이 명백하지만, 백인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은 결코 그에게 무죄 판결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양심, 영혼에 관한 것이기에 변호를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이 사람의 길이기에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싸워야만 하는 싸움이기에 애티커스는 끝까지 마음을 다해 차별받는 흑인 청년을 변호한다.

우리가 그랬듯이 지금 미얀마 사람들은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싸워야만 하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를 위한 사람다운 삶을 위한 싸움이기에 사람의 영혼에 관한 싸움이기에 그들은 포기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미얀마 국경 카렌지역에는 군부의 폭격과 박해를 피해 2만명이 넘는 난민들이 발생해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짐승처럼 숲속에 숨어 살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무차별적 공습을 자행해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숲속으로 도망친 수많은 난민이 물과 식량, 의약품 등의 부족으로 극심한 고통 속에서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바람과 하늘을 가릴 텐트조차 없어 동굴에서 살고 있다.

카렌 난민원조단체는 세계 각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고 ㈔함께하는 아시아 생명연대에도 공문을 발송해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지난 3월28일 노동조합과 시민들의 성금을 독립자금 보내듯이 은밀한 방법으로 현금을 미얀마공동체를 통해 전달했고 이번은 태국 치앙마이를 통해서 난민들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끝내 사람이기를…

“어찌하여 인간은 그렇게 붉은 뺨을 갖게 되었을까? 인간이 너무 자주 부끄러워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고귀한 자는 남에게 수치를 주지 말라고 스스로 명령한다. 고귀한 자는 모든 고뇌하는 자들 앞에서 스스로 수치스러워지라고 명한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언제부터인가 타인을 부끄럽게 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일에는 점점 거침없어지고 대담해지면서, 정작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일에는 눈을 감는 자신을 보게 된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 눈의 티끌을 빼려 악다구니를 쓴다. 이젠 그런 내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먼저 이웃의 고통에 외면하는, 싸워야 하는 싸움을 피해 도망치는, 나를 부끄러워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 부끄러움 잃어버리는 순간, 나를 잃어버리고, 자신에게 마저 낯선 괴물이 되고 말 것 같아 두렵다. 끝끝내 ‘나’이기를, 끝끝내 ‘사람’이기를….

*외국인노동상담소는 미얀마 난민을 위한 모금운동을 합니다.(계좌번호 : DGB대구은행 050-08-025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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