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노동조합 법률원에서 주로 노동법을 근거로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고 노동권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구조조정이다. 각종 터널링부터 시작해 사모펀드에 의한 회사 자산 약탈과 차입매수(LBO), 외국 자본의 투기적 행위, 사업장 해외이전·폐업, 각종 희망퇴직·정리해고 등은 노동법만으로는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회사법 등(각종 특별법 포함)도 같이 동원해야 하는데, 회사법 등은 노동권에는 애초부터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구조조정은 큰 틀에서 회사법적 논리에 따라 이뤄지므로 최소한 회사법 등을 노동자에게 덜 적대적으로 만들거나 중립적으로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회사법이 주주보다 노동자에게 더 유리한 경우라면 이미 준(準)사회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인바, 아직은 먼 미래다. 우선 가까운 것부터 시작하자.

다른 많은 국가들과 유사하게 현행 한국 회사법 체계에서 노동자는 주인공이 아니라 기껏해야 이해관계인 지위에 있다. 그런데 단체협약상 협의 조항의 한계가 명확한 것처럼 이해관계인의 지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사가 회사(법인) 혹은 주주에 대해 신인의무(신의성실의무)를 지는 것 외에 ‘이해관계자(노동자 등)’에 대해서도 신인의무를 부담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①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사가 법인(혹은 주주)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하고,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신인의무 위반으로 업무상 배임 등의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현재는 법상으로는 이사의 이러한 의무는 인정되지 않으므로 단체협약상 고용안정 조항 등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② 배당도 마찬가지다. 배당은 회사의 재산을 주주에게 유출하는 것으로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가능한데 이러한 제한은 주된 목적이 바로 회사 채권자 보호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해관계인의 지위에서는 주주의 배당권을 제한하는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사와 지배주주가 이해관계자에 대해서도 신인의무를 부담한다면 달라질 여지가 있다.

2000~2019년 동안 미국 33개주(준거법으로 흔히 사용되는 델라웨어주는 아니다)에서 회사법에 이해관계자 조항을 두고 있었고, 이해관계자의 범위에 노동자는 거의 항상 포함됐다. 그런데 위 조항들은 2010년 이후로는 전부 임의 규정이 됐고, 이사의 재량을 너무 많이 허용한 결과 이해관계자 조항이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의 전 세계적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조 추세 등에 따라 이해관계자 조항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사항을 개선해 의무 규정화하고, 이해관계자 간의 이해조정 기준을 사전에 정해 이사의 재량을 좁힌다면 최소한 현재와 같은 약탈적 구조조정의 폐해는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 회사법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노동자는 회사에 특유한 인적 투자(firm-specific human investment)를 했다는 점에서 주주와 비슷한 지위에 있다. 이러한 노동자의 지위를 법적으로 명확히 한다면 일정한 조건을 갖춘 소수주주가 이사의 위법행위에 대해 주주대표소송 등을 제기하는 등 소수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노동자도 주식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자 지위 그 자체에서 주주와 유사한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이사제도 현재 제기되고 있는 수준보다 좀 더 넓고 깊은 범위에서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그 외에도 지배주주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 인정 및 지배주주의 책임 확대, 기업 약탈행위 규제 등 노동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나 실제로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사법적 문제들이 많다. 노동자의 회사법적 지위에 대해서 노조도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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