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여름이면 넓은 잎 무성하게 호박이 잘도 자란다. 어디 붙들 것만 있으면 필사적으로 감고 오른다. 부들부들한 잎 따다 쪄 내고 강된장 올려 싸 먹으면 입맛 떨어진 여름철 밥 두 공기 뚝딱이다. 호박잎 쌈 파는 가게가 흔치 않던데 인터넷엔 그게 다 있다더라. 누가 줘서 맛있게 먹고는 문득 시골집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해 밭 한 귀퉁이 호박잎이 잘 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한 번 와야 먹지 않겠냐고, 택배 부치려니 요즘 날씨에 상할까 무섭다고, 엄마는 말했다. 가야지요. 코로나 좀 잠잠해지거든. 택배가 왔다. 고추와 마늘과 가지, 또 검붉은 자두며 블루베리까지 가득했다. 그리고 찐 호박잎이 보냉제 바로 아랫자리에서 나왔다. 그 저녁 강된장을 지지느라 불 앞에 섰더니 땀이 줄줄 난다. 그 옛날 엄마가 여름이면 왜 불 쓰지 말고 대충 먹자고 했던지를 알겠더라. 배달시켜 먹을 걸 하는 후회도 잠시, 허겁지겁 쌈을 밀어 넣었다. 배부르니 산책을 나선다. 불볕이, 또 소나기가 쏟아졌던 하늘 서편이 붉게 탄다. 한낮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아스팔트 위로 퇴근길 차량이, 밥벌이 나선 오토바이가 넘친다. 교차로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었고, 언제나처럼 맨 앞줄에 섰던 라이더들이 필사적으로 튀어 나간다. 아직 밥때구나. 덜컹대는 배달통엔 퇴근 늦은 청년의 혼밥이, 학교 못 가 집에서 뒹군 아이들이 졸라 댄 치킨이, 또 나만 모르는 유명 맛집의 음식이 실렸을 테다. 누군가의 밥 한 끼를 싣고, 저기 붉게 타는 하늘을 향해 불나비처럼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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