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중대재해로 산재 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법과 제도를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소속 전문가들의 제안을 연속 게재한다.<편집자>

임영섭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부대표(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
임영섭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부대표(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

지난해 9월 건설안전특별법 입법예고안을 처음 대했을 때 보자마자 덮어 버렸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가 서로 다른 나라의 부처가 아니고선 이런 법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법은 지지부진했고 거의 잊고 있었다.

“건설현장을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건설안전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겠다.” 얼마 전 새 총리가 건설현장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다. 이 법안을 다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까 더 문제투성이다.

첫째, 이 법은 안전관리 체계부터 안전교육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의 완벽한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법에서 정하는 안전총괄책임자와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관리책임자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만드는 사람이야 양 법의 안전교육이 어떻게 다른지 궁색한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업주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서류를 만들어 캐비닛에 보관하고 말 것이다.

둘째, 법체계의 문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기준법의 특별법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에 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특별법이다. 건설안전특별법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의 특별법 성격을 띤다. 나아가 건설현장이 위험하니 특별법을 만든다면 화학공장이 위험하니까 화학안전특별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누더기가 될 판이다.

셋째, 지도·감독의 중복 문제다. 건설안전에 대한 지도·감독은 노동부에서 하고 있다. 노동부는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다른 부처에서 하고 있는 지도·감독 업무를 통합해야 할 참이다. 그런데 이 법이 제정되면 오히려 별도의 지도·감독이 필요하다. 행정의 비효율이 발생하고 업계는 중복점검에 시달리게 된다.

무엇보다 제도가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9년 서울 잠원동 철거현장 붕괴사고가 나자 건축물관리법을 제정해 해체계획서를 작성해 허가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광주 철거현장도 해체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승인받았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에도 타이밍이 있다. ‘천만 명 서명운동’같이 구호로서 안전을 관리할 때가 있었고, 선진국의 제도를 배워 안전관리 틀을 만드는 때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한 틀을 갖췄다. 지금은 법과 제도가 현장에서 정착하도록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다.

안전 선진국인 영국은 이미 높아진 안전수준을 바탕으로 자율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구체적인 안전조치 방법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업주가 위험성 평가를 통해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유도한다. 법령에서 정하는 안전조치에도 대부분 ‘합리적으로 실현 가능한 한(so far as reasonably practicable)’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일률적인 강제의 폐단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2019년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해 사업주의 책임을 크게 강화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매우 강한 처벌법을 제정한 바 있다. 이를 현장에 정착시키는 데 집중할 때다. 그런 연후에 이를 평가하고, 평가를 바탕으로 보완하는 것이 순서다.

건설안전특별법안은 그 자체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전에 관한 시대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발상의 산물이라고 판단된다. 진정 의무의 신설이나 강화가 필요하다면 해당 법률을 개정하면 될 일이다. 건설안전특별법안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폐기해야 하는 이유다.

* 기고는 본지의 의견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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