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정권 출범 당시 호기롭게 외쳤던 최저임금 1만원 시대는 최종적으로 물 건너간 얘기가 돼 버렸다. 호언장담하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 아픈 일은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희망고문만 하다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정책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첫째,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격차 완화와 소득분배 개선이라는 최저임금제의 목적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역시 가장 심한 나라다. 대다수 노동자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최저임금이 중위 노동자의 60%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주장은 다수의 노동자가 전적으로 최저임금에 의지하고 있고 사회보장 수준 역시 상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나치게 정치적 논리에 의존하면서 최저임금 결정의 원칙과 기준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 일정부분 정치적 입장이 반영돼 왔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특히나 심했다고 할 수 있다. 2018년과 2019년은 1만원에 도달하기 위해 16.4%와 10.9%를 인상했다. 하지만 재계의 반발에 밀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월할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해 최저임금 인상분을 상당부분 상쇄시켰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더 불리한 방향으로 개정함으로써 제도 취지에 역행하고, 제도를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2020년과 2021년은 각각 2.87%, 1.5%로 경제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인상률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2022년은 5.1% 인상(9천160원)으로 결정해 평균 인상률로도 박근혜 정부에 못 미치고, 금액상으로도 1만원 달성에 실패했다. 제도의 원칙과 취지도 못 살리고, 목표달성도 못한 것이다.

세 번째, 전통적으로 재계가 주장하는 비용부담 증가라는 오래된 프레임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점 역시 안타까운 대목이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이유는 인건비보다는 기술혁신의 문제나 임대료 부담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최저임금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원·하청 문제와 임대료 등의 문제가 더 큰 것이다. 모든 제도는 연관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제도 하나가 전적으로 모든 원인이 되지 않으며, 전적으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다만 주된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 병행이 필수적이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대해 타당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최저임금제도와 관련한 과제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나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렇다.

첫째,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수많은 경제지표와 노동시장 현황을 참고하는데,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결정구조는 현실적으로 노·사·공이 심의하여 결정하는 구조다. 특히 노사 간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익위원의 의사가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저임금의 결정기준과 심의방법에 큰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거시경제지표로 누구나 인정하는 (소비자)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기본으로 하면서 불평등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지표와 사회보장 수준을 반영하는 지표 등으로 보완하는 방식을 통해 결정 과정을 단순화·객관화하고, 노동자의 수용성도 높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경제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문제로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신고전파경제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이중노동시장의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구조적 개편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재계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이유 역시 다른 구조적인 개선 노력이 없는 상황에서 최저임금만을 인상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서서히 바꿔 가기 위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여러 가지 제도를 병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양극화 개선 정책이 전체 경제의 선순환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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