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평론(International Labour Review)은 국제노동기구(ILO)의 회보로 노동과 고용에 관한 다방면의 논의를 소개해 왔다. ILO 이사회 결의에 따라 1921년부터 출간된 국제노동평론은 올해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 연 4회 발행되는 국제노동평론은 지난달 통권 160호를 냈다. 단체교섭 확장, 인도 제조업의 노동시장 유연화, 미얀마 봉제공장 여성 이주노동자, 영국 평생직업의 변화, 50세 이후의 건강과 근무 능력 등의 논문이 실렸는데, 일과 자유의 문제를 다룬 글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스위스 취리히대 법학과의 니컬러스 부에노(Nicholas Bueno)가 쓴 일과 자유에 관한 글의 제목은 ‘일할 때의 자유(freedom at work), 일을 통한 자유(freedom through work), 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ork) : 노동권 다시 생각하기’다. 제목에서 보듯 부에노는 일(work)과 관련해 세 가지 차원에서 자유의 문제를 살피고 있다. 여기서 자유는 자율·자치권·자주성으로 볼 수 있다.

‘일할 때의 자유’는 일하는 과정과 그 과정을 설계하는 행위에 대한 노동자의 자율적 통제를 말한다. 근무환경을 짜는 능력이 포함되며, 일의 시간과 속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일을 통한 자유’는 일터와는 관련이 없고, 일의 도구적 기능인 소득 창출과 관련이 있다. 즉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안정을 말한다. 여기에는 인생 경로를 바꿀 수 있는 선택도 포함된다. ‘일로부터의 자유’는 일에 구속됨이 없이 인생을 즐기는 자유를 말한다.

노동권의 역사는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일할 수 있는 자유에서 시작해 개인의 인생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일의 ‘계약화’는 일의 의미를 노동자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행위가 아니라 임금을 받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단순 행위로 축소시켰다. 그 결과 일은 노동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나 노동자가 잘하는 재능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노동자가 자신의 개성을 발현하거나 자기 시간을 건설적으로 채우는 것과도 상관없게 됐다. 이러한 일의 타락은 오늘날 일을 하는 데 들어가는 인간의 노동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노동(meaningful labour)’이 아니라는 문제를 낳았다.

부에노는 현대 사회에서 일과 관련된 세 가지 차원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상호충돌하는 관계에 있다고 지적한다. 자율성 증대를 뜻하는 ‘일할 때의 자유’와 소득 증대를 뜻하는 ‘일을 통한 자유’가 일치하기 어렵고, 또한 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일로부터의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

일과 자유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부에노는 노동법과 자유의 관계를 다룬다. 역사적으로 노동법의 발전은 ‘착취 금지’에서 시작해 ‘지배 금지’를 거쳐 ‘능력’이라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분석한다. ‘착취 금지(non-exploitation)’ 단계에서 노동법은 불법적 착취와 합법적 비착취 사이의 법률적 경계를 설정한다. 이 경우 아동노동과 강제노동이 아닌 한 전통적 고용관계의 불평등과 복속은 합법으로 인정된다. 또한 ‘동일 임금(equal remuneration)’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동일 가치의 일(work of equal value)’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생산성과 숙련이라는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는 구조적으로 노동시장의 바닥에 자리한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 착취의 부재가 노동자에게 자유를 저절로 보장해 주지 않는다.

‘지배 금지(non-domination)’는 공화주의적 접근법이다. ‘지배 금지’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사하는 통제력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타인의 통제에 저항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현대사회에서 노동자의 소득은 사용자의 지배를 받아들일 때만 허용된다. 일자리가 많아지고 실업(보험) 혜택이 늘어나면 사용자의 지배에 대한 노동자의 경제적 종속은 줄어들고, 그만큼 사용자의 지배도 약화된다. 역설적으로 비공식경제에 속한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지배력이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로 노동법 적용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적용되는데 근로기준법은 적용되지 않거나, 동일한 노조법 안에서도 단체결성은 허용되는데 단체교섭은 불명확한 것이다.

‘능력’의 관점에서 노동법은 노동자가 자신의 안녕과 복지와 존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라는 ‘인간발전(human development)’의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건강과 주거, 자유로운 이동과 교육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일은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다른 노동자와 상호 인정이라는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수단”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법이 노동시장에 대한 교섭력 강화 같은 집단적 권리를 넘어 노동자의 능력 개발과 선택의 자유라는 개인적 권리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는 노동자의 “의미 있는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능력과 개인적 능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일과 자유에 관한 니컬러스 부에노의 논문은 한국의 노동문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노동법 논의는 노동자가 쉬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일로부터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을 꺼렸다. 소득 부재로 인해 노동자의 생존이 어려워지는 ‘현실’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해고는 살인’이라는 슬로건과 ‘비정규직 철폐’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사실 한국의 노사정 3자 모두는 입으로는 ‘노동해방’과 ‘상생’을 외치면서도 몸으로는 현실에 안주하며 사용자의 지배와 통제가 견고한 고용관계에 더 많이 종속되는 체제를 추구해 왔는지도 모른다. 부에노의 개념을 빌리자면 ‘의미 있는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하는 ‘일을 통한 자유’에만 집중해 온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일할 때의 자유’와 ‘일로부터의 자유’는 더 멀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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