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수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

정부가 산업재해전문근로감독관을 양성하는 방안과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을 추진한다고 한다. 정부는 산업안전감독관 확대와 역량 강화 방안을 위시해 다양한 방안을 구상 중이다. 현재 산업안전감독관 1명이 담당하는 사업장이 일반 근로감독관보다 4배 많은 4천개가 넘는 조건에서 산업안전감독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필요·충분한 정도로 늘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효적인 산재 예방 해법!?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중대재해 소식이 매일 반복되어 들려온다. “적어도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아닌, (사업주가) 최소한 징역형을 받아야 해요. 그렇게 법이 정해지면, 그 사업주는 다음날 자기 회사 안전관리요원이 되지 않겠어요?” 얼마 전 평택항에서 업무 중 재해로 숨진 고 이선호씨의 장례가 28일째 치러지지 못하던 상태에서 고인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한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산업재해가 줄지 않는 원인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즉 산재예방은 현장에 책임감 있는 안전관리요원을 배치하면 된다. 책임감을 느끼는 안전관리요원 중의 하나는 사업주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자신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업주가 좀 더 책임감을 갖는 안전관리요원으로 역할하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은 벌써 한계를 드러내어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5월13일)한 상태다. 사망사고 발생시 ‘법인과 경영책임자에게 최소 1억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자는 내용이다. 이 의원에 따르면 애초 발의된 안에는 ‘벌금형의 하한’과 ‘양형특례조항’이 있었으나, 두 조항이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양형 관행에 비춰 볼 때 “처벌의 상한선이 높아 봤자 사망한 노동자 1명당 평균 45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영국은 최소액이 8억원”이다. “한국 노동자 1명의 목숨 값이 영국 노동자 1명 목숨 값의 177분의 1밖에 안 쳐 주기 때문에 산재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다”고 한다.

위험요소·공정, 현장의 근로자위원이 가장 잘 알아

우리나라에서 최근 여야가 합의해 제정한 법이 이러한 실정이니, 그다음 순서는 정해져 있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즉 노동자 중에서 현장 노동자 전체의 안전을 책임질 대표를 정하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주체는 노동조합이 될 수 있고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른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중소기업 등에는 노동조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12%인데, 정작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다수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 등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30명 이상 100명 미만 업체의 노조 조직률은 1.7%이고 30명 미만 사업체 조직률은 0.1%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조합(간부)이 현실성 있는 산재예방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산업현장의 위험요소는 복잡다단하고 작업 과정의 곳곳에 숨겨져 있다. 작업장의 공정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위험도가 높다. 작업과정에 대해 외부의 감독자가 들어가서 일일이 확인하고 단속하는 것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현장의 작업조건과 환경을 꿰뚫고 있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산재를 예방하는 데 가장 적임자다. 많은 사업장에서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이 산업안전위원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관건은 이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산업안전위원으로서 제대로 산재예방을 위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자신의 권한과 책임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해 역량을 향상시켜야 한다. 노사협의회가 법정 의무기구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의사록을 보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관행을 바꾸어 이들 근로자위원으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충분히 교육해야 한다. 그러면 수백 수천의 근로감독관보다 훨씬 큰 성과를 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역량은 현장에 축적되고, 결국 산재예방의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될 것이다.

산재 예방 선진국의 근로자위원 교육과 노동자 참여

유럽연합의 유럽사업장협의회 지침(94/45/EC)은 근로자위원 교육을 중요하게 보고 보장하고 있다. 산재예방에서 앞선 국가들의 산업안전 정책에 따르면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안전보건 교육을 중시해 사업주 의무로 부과하고 산재예방에 노동자의 참여를 적극 보장한다.

예로 독일의 경우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 기능을 수행하는 재해보험조합(BG)은 예방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있다. 조합의 재정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재해예방 사업 예산지출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재해보험조합 전체 예산 대비 재해예방 비용 비중은 이미 15년 전인 2006년부터 7%를 차지했다. 그리고 재해예방 비용 중에서 교육훈련 예산 비중은 1970년대 10%에서 최근에는 20%로 늘었다. 교육을 위한 사업비의 상당 부분은 중소규모 사업장 교육에 집중되고 있다. 2019년도 전체 재해보험조합에서 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39만여명이다. 그중 다양한 사업장 종사자들이 56%(22만명)를 차지하고 있고 기업 안전책임자 9만600명, 기업 안전전문가 2만400명, 기업 보건의 490명, 그리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6만7천명이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했다[독일산재보험조합(DGUV) 홈페이지].

독일의 산재예방 사업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다른 하나는 산재 사고의 조사 및 예방 협조에 노동조합과 종업원평의회로 부르는 노사협의회(Betriebsrat) 위원들을 참여시킨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영기본법은 노조의 산업안전담당위원과 근로자대표협의회에 안전담당위원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정하는 안전관리자와 사업장 보건의 임명에도 노조의 동의를 의무화하며, 사고 조사에 노조 위원을 참여하도록 해 예방을 강화하고 있다. 사업장의 안전보건 활동에 노동자의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 국가는 1977년 영국에서 안전대표 및 안전위원회법(Safety Representatives and Safety Committees Regulations)이 제정된 이후 노동자의 참여를 제도화했다. 영국이 1974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노동자 안전대표제를 도입한 배경은 사업주에게만 노동안전보건을 맡겨 놓으면 해결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노사협의회 위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필요성에 대해서는 노동자쪽만 아니라 사용자쪽도 매우 공감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교육 다음으로 산업안전·보건 및 작업환경 개선 관련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김기우·송태수·이원희(2019), ‘노사협의회제도에 관한 입법영향분석’].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교육·훈련시켜 모든 현장에 책임감 있는 ‘안전관리요원’을 배치하는 것이 가장 실효적인 산재예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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