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주는 두 차례나 파견소송을 협의했다. 그 둘 다 파견근로를 주장하면서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해서 근로자지위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하나는 경리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개발 중인 상용시제차량 시운전업무에 종사하는 (드라이버) 노동자들의 사건이었다. 이들은 현대자동차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작성하고서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로 일해 왔다. 그동안 현대자동차에서 자동차생산공정에서 일해 온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해서 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아 왔던 터라, 이제는 자동차생산공정이 아닌 외곽공정까지 파견소송이 확대하고 있는데, 이들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3년 전 소송하겠다고 찾아왔을 때, 나는 자동차생산공정과 같이 승소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대답해 줬다. 예상했던 대로, 피고 현대자동차는 법원에서 파견근로로 인정된 자동차생산공정과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그러니 소송에서 원·피고 간 공방은 이를 둘러싸고 전개됐다. 자동차생산공정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고, 그 공정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이 진행돼 왔다. 경리 사건은 1심 서울중앙지법에서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청구가 기각됐고, 드라이버 사건은 2심 서울고법까지 파견근로로 인정돼 근로자지위확인 등의 청구가 인용됐다. 이렇게 본다면 사건마다 입장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경리노동자들은 불복해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상소하면 승소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고, 드라이버 노동자들은 언제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지를 물었다.

사실 지난주에 이들 사건 외에도 파견소송에 관한 문의가 있었다. 현대제철에서 자회사를 설립해서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7천여명을 그 소속 근로자로 하는 걸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파견소송 중인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문의했던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자회사 방식으로 추진하는 건 새롭지 않다. 지난 촛불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 나라에서 자회사 방식으로 추진됐던 터라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에서 추진한다는 것이 관심을 끌어 뉴스거리로 되고 있는 것이겠다. 현대제철 자회사 추진에 관해서 한겨레신문 기자의 문의에도 나는 이런 취지로 대답했다. 내가 진행해 온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건의 경우는 1·2심에서 승소하고서 사측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그 소송을 취하하고서 자회사로 전적하겠다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현대제철 ‘근로자’인 경우보다 자회사 소속일 때가 처우가 월등하다면 몰라도 현대제철의 80% 수준의 임금을 지급한다는데 이에 따를 노동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아직 파견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우라면 크게 동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지난주는 파견소송에 관한 협의와 문의로 지나갔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사용사업주 근로자로 고용해 달라는 소송 진행을 위해서, 파견법 위반을 피하려는 사용자의 자회사 설립추진에 대응하기 위해서 협의를 하고 문의에 답하면서 지나갔다.

2. 그런데 만만한 사건은 없다. 지난 한 주 협의하고 대답했던 사건 중 어느 하나도 처음부터 파견근로로 인정될 거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었다.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커다란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대답했어도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는 나는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파견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의 드라이버와 현대제철 순천공장의 경우는 고등법원까지 파견근로로 인정돼 기뻐했다. 하지만 경리 사건은 지방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해 낙담했다. 자동차생산업무를 한 것이 아니고, 사내하청업체에서 경리업무를 한 것이니 파견근로로 인정할 수 없다고 1심 법원이 판결했던 것이다. 판결문에서 이 같은 법원판결의 이유를 넉넉히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납득하지 못했다. 현대차에서 사내하청업체는 자동차생산업무에 소속 근로자를 제공하는 파견사업주다. 이미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파견사업주라고 판단됐다. 현대차 자동차생산업무에 종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파견근로를 하고 있다고 인정됐다. 현대차는 근로자파견에서 사용사업주인 것이고, 사내하청업체는 파견사업주인 것이다. 사내하청업체 경리는 파견사업주인 사내하청업체에서 파견근로자들의 고용 관련 업무만 수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업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현대차가 지시한 업무, 즉 근태 등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업무를 주되게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의 수많은 지시가 직접적으로, 사내하청업체 사장 및 소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리 노동자들에게 떨어졌다. 그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명백히 사용사업주인 현대차의 지시에 따라 근무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내하청업체 경리노동자들은 사용사업주의 직·간접적인 지시를 받고서 사용사업주의 업무를 수행했음이 명백한 것이라서 파견근로를 했다고 봐야 마땅하다. 누구를 위해서 일한 것인지, 실질적으로 누가 지시해서 일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파견근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심 법원은 자동차생산공정업무가 아니라고, 사내하청업체 사장을 통해서 한 것이라며 파견근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동차생산공정업무만 파견근로가 인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파견사용자로서 사내하청업체 사장이 한 지시가 아닌데도 이 같은 이유로 파견근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지 못하겠다.

3. 곰곰이 살펴보면, 이 나라에서 나는 수도 없이 납득하지 못했다. IMF 관리체제이던 20여년전,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소속 상근변호사로서 정리해고 같은 대대적인 기업구조조정에 맞서 파업투쟁을 하던 노조간부 등 노동자들이 업무방해로 수배되고 체포와 구속돼 변호할 때에는, 불법파업으로 처벌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법정에서 변론했지만 도무지 듣지 않는 것에 절망했다. 당시 수백여개의 사건에서 수천명을 이렇게 변호했지만 법원은 불법파업이니 유죄로 처벌한다는 판결만 선고했다. 하급심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판결한다는 것으로 스스로 정당하다고 변명했고,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인용해서 반복했을 뿐이다. 이 무렵 현대차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비정규직노조를 조직해서 정규직화를 주장해서 투쟁했다. 그 투쟁은 사용자가 아닌 현대차를 상대로 해서 한다고, 현대차 내에서 한다고 불법의 딱지를 붙여 처벌하고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당시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을 기소해서 형사재판이 진행됐다. 파견근로라고 내가 주장했지만 법원은 듣지 않았다. 단 한 차례도 들어주지 않았다.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도급계약서만으로 내 파견근로 주장을 번번이 외면했다. 그러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 활동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사내하청업체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하자 원청 현대차를 상대로 파견근로라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것이 2005년 12월이었고, 2007년 6월 1심 서울지법에서, 2010년 11월 2심 서울고법에서 파견근로로 인정돼 현대차 근로자라고 판결받았고 2015년 2월 대법원 판결로 최종 확정됐다. 그리고 2010년 7월 대법원이 울산공장 최병승 등 부당해고 구제신청 재심판정 취소사건에서 파견근로를 인정해 원심판결을 파기해 환송했다. 이렇게 되자 현대차 자동차생산공정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경우는 파견근로로 각급 법원에서 인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자동차생산공정에 있어서는 더는 파견근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굳이 파견의 이유를 일일이 판결문에서 찾아 읽을 필요도 느끼지 못할 지경이 됐다. 그러니 내가 현대차에서 파견의 이유를 판결문에서 찾아 읽는 것은 자동차생산공정이 아닌 공정에 종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 사건에서다. 그리고 오늘 판결문을 읽고 다시 답답해하고 있다.

4. 사용자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해 준다면 소송을 할 이유가 없다. 가끔 노동자를 대리해서 내가 소송을 하는 데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듣는다. 노조가 소송을 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를 상대로 투쟁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변호사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노사합의로 원만히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파견소송 말고도 통상임금 등 임금소송을 둘러싸고도 전·현직 노조간부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논쟁을 벌이는 걸 듣는다.

다시 말하지만 사용자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해 준다면 소송할 이유가 없다. 사용자가 사내하청 근로를 파견근로로 인정해 파견법상 노동자 권리를 보장해 준다면 파견소송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파견소송은 원청 사용자가 파견법상 노동자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아서 하는 것이고, 노조의 투쟁이나 노사합의로 그 노동자 권리를 관철하지 못해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파견소송할 이유가 없는 세상을 바란다고, 노조가 투쟁이나 노사합의로 파견법상 노동자 권리를 보장받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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