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장맛비 잠시 멈춘 한여름, 청년 알바노동자가 얼음 모형 안에 들어 습한 더위를 견딘다. 코로나 시대에 얼어붙은 것이 수없다는데, 별 수도 없이 거기 갇힌 사람들 탄식이 영화 겨울왕국 속 얼어붙은 안나의 마지막 입김 같다. 얼음을 녹일 진정한 사랑 같은 건 동화 속 이야기였나. 마법 같은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주식과 코인 열풍이라면 좀 달랐을까, 큰 수익을 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내 얘기는 아니었다. 판타지다. 얼어붙은 처지가 변함없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북극의 빙하만이 잘도 녹아내렸다. 여름이면 사람들 줄을 길게 서는 유명 평양냉면집에 가서 녹두전과 제육, 소고기 등심 따위 곁들임 음식을 고민 없이 시켜 먹게 되면 성공한 기분이 들 것 같다고 한 청년은 고백한다. 먼일이다. 도시락을 사면 주식을 한 주 준다는 신상 한정식 도시락을 편의점 매대에 진열한다. 유통기한 임박한 가성비 도시락을 비워 배를 채운다. 계단을 내려간다. 지하 눅눅한 좁은 방에 누워 콘크리트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을 모르고 오르는 집값 탓에, 거기 화장실 옆 주방살이를 고맙게 견딘다. 찔끔 올라 사실상 삭감된 저들의 ‘최고’임금은 방의 크기와 먹거리의 종류와 스마트폰 요금제를 결정했다. 빠듯했다. 꿈꾸는 일에 쓸 종잣돈은 냉면집 녹두전만큼이나 사치였다. 얼음 모형 틀에 들어가 처지를 알렸다. 없는 살림에 제법 큰 돈 들여 만든 모형을 한 번만 쓰기는 아깝다고. 저 청년은 시내 곳곳에서 한동안 얼어붙어 땀 흘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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