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숫자로 표현되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에게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생계·생활과 직결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최저임금에 대해 들어 봤다.

필수노동자! 말만 말고 최저임금 올려라
전덕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사무국장
 

전덕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사무국장
▲ 전덕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사무국장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한다. 체위를 변경하고 신변을 처리하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사회활동을 돕는다. 비대면 노동이 불가능하고 장애인 생존을 위한 노동을 제공하다 보니 정부에서는 코로나19 시대 필수노동자라며 치켜세웠다.

하지만 현장은 무법천지다.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활동지원사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예산을 충분히 투입하는 것에 무관심한 보건복지부 탓이다. 근로감독을 게을리하는 고용노동부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임금은 복지부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서비스 제공 시간당 수가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복지부가 수가를 정할 때 활동지원사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임금이지만 그들에게는 사업예산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수가인상 수준은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밑돌았다. 과거 인상률을 보면 최저임금이 7~8% 오를 때 수가는 2~3% 오르거나 동결됐다.

딱 한 해, 활동지원 수가가 최저임금 인상률을 대폭 넘어 인상된 때가 있다. 바로 2019년이다. 2015년부터 4년에 걸쳐 활동지원기관과 활동지원사들은 이 수가 수준으로는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가 인상률이 최저임금 인상률을 밑돌다 보니 주휴수당마저 지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부 활동지원기관은 사업을 반납했고, 어떤 기관은 정부에 항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또 일부 기관은 임금을 체불하고 불법적인 임금채권포기각서를 강요하며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했다.

이런 난리와 투쟁을 통해서 수가는 인상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잇따르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어야만 정부의 예산책정으로 이어진다. 최저임금이 인상된다고 활동지원사의 임금이 반드시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최저임금이 인상되지 않으면 활동지원사의 임금인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직종의 필수노동자라고 해서 사정이 다를 리 없다. 필수노동자를 지원하려면 우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말로만 ‘필수노동자’라 부를 게 아니라 최저임금부터 대폭 인상하라.

마트노동자에겐 절박한 생존 문제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위원장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위원장
▲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위원장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마트노조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 동안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10년을 일해도, 2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을 받는 마트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자신의 임금인상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만큼 절박했기에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서 싸워 왔다.

93년 이마트 창동점을 시작으로 대형마트가 그동안 한국에서 성장하고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저임금에 골병들어가며 착취당하던 노동자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장과 후방(창고)을 오가며 끊임없이 물건을 진열하고 높아진 진열대 때문에 무거운 박스를 들고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하루종일 칼질을 해대며 어깨가 다 끊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온몸이 다 망가질 정도로 일하며 묵묵히 마트를 지켜왔던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지금 대형마트사는 굴지의 유통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통재벌은 마트노동자들에게 딱 최저임금만을 지급할 뿐이다. 우리 마트노동자는 반찬값을 벌러 나온 게 아니라 엄연히 가계를 책임지며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음에도 그 노력과 헌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외면당해 왔다.

재벌과 보수언론은 항상 최저임금 인상하면 회사와 나라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항상 최저임금 인하와 동결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작 골목상권을 침해하며 소상공인을 어렵게 했던 건 유통재벌이 아닌가? 지난해 1.5% 최저임금 인상으로 웃은 것은 소상공인도, 자영업자도 아닌 유통산업의 재벌 대기업이다. 최저임금 8천720원이 과연 노동자가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임금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저임금 노동자도 평범한 삶 영위할 수 있어야
김영훈 한울타리공공노조 위원장

▲ 김영훈 한울타리공공노조 위원장
▲ 김영훈 한울타리공공노조 위원장

조합원 얘기다. 40대 초반의 국회 시설관리 노동자 A씨의 아내는 최근 둘째를 낳았다. 산후조리원 비용이 350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지출하고,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정부 아이돌봄 서비스 지원을 받고 있는데 자기부담금이 90만원이다. A씨의 급여는 기본급 182만2천480원(딱 최저임금)에 수당 몇 가지를 더해 198만원 정도다. 첫째 아이를 낳은 뒤 한참을 고민하다 국회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 사정이 좋아지겠지 싶어 둘째를 낳았다. 그런데 그의 임금은 파견노동자일 때와 같은 최저임금이다. 이 조합원은 둘째를 가슴에 안게 돼 너무 기쁘지만 그 만큼 걱정이 많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최저임금은 아르바이트 임금이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이 임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꾸리고, 삶을 영위한다. 아니, 정확히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로 생계 위협을 느끼며 근근이 살아간다. A씨는 퇴근 후 알바, 주말 토·일요일에도 알바를 한다.

일하고 퇴근하면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삶. 너무나 평범한 삶이지만, 최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너무나 꿈만 같은 삶이다. 건강한 사회라면 법이 정한 최저임금을 받으며 하루 8시간 일하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가구생계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이 논의돼야 한다.

사용자들은 지불능력을 말한다. 그들에게 임금은 비용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 동결·삭감을 말한다. 그런데 사용자들에게 비용은 임금뿐이 아니다. 임대료·시설구입비·가맹점비·카드수수료 등 다양한 비용을 안고 있다. 이 같은 비용을 낮추기 위한 방안도 있다. 정부는 행정력으로, 국회는 입법으로, 대기업은 상생·공정거래를 통해 개입할 수 있다. 사용자가 살 수 있는 구멍은 이처럼 여러 개지만, 최저임금 노동자가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최저임금뿐이다. 최저임금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 진실을 최우선에 두고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

새해가 되면 찾아 보는 것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최저임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해였다. 이전에는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궁금하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사회적 요구로 ‘최저임금 1만원’ 구호가 번지면서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 최저임금 인상이 왜 필요한지 자연스레 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른 만큼 올라서였을까. 아니면 현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포기해서였을까.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라졌다. 재계가 동결을 제시하면 노동계는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루틴’에 조금은 지겨워졌다. 매년 비슷한 방식의 논의가 진행된다면 굳이 그 바쁜 30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지난한 회의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최저임금은 내년 나의 임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의미를 갖지 않게 됐다.

그래서 청년유니온은 최저임금에 대한 분위기를 환기해 보고자 조합원들과 최저임금을 직접 설계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합리적인 근거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최저임금에게 우리가 근거를 부여해 줬다. 최저임금에 반영돼야 할 사회·경제적 지표를 두고 무엇이 필요할지 토론해 봤다. 지표로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정규직 평균임금 상승률,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 등이 제시됐다. 아무래도 체감이 높은 물가상승률이 기본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문제인식이 있었다. 이러한 기준을 반영해 결정된 내년 최저임금은 9천448원(월 환산 197만4천654원)이었다. 제일 높은 금액과 낮은 금액의 중위값이 아닌, 공익위원이 정한 금액이 아닌, 근거를 바탕으로 논의된 최저임금은 우리가 어떤 기준을 두고 논의를 해야 할지 고민하게 했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새해가 되면 올해 받게 될 임금을 찾아보게 된다. 누가 어떤 과정의 논의를 거쳐 결정했는지 모른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임금일 뿐이고 선택권이 없다.

더 이상 최저임금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은 불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최저임금을 결정할지,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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