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매일경제신문이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해운산업 행사를 하느라 가뜩이나 바쁜 부산신항이 이틀간 멈춰 항만업계의 불만이 가득하다는 기사를 ‘단독’이란 이름을 달아 보도했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부산신항 다목적부두에 와서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전략 선포 및 1.6만TEU급 한울호 출항식’을 열었다. 매경은 7월1일자 1면에도 ‘40분 대통령 행사 위해… 이틀간 멈춘 부산신항’이란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매경은 이 단독기사에서 “대통령 행사 한다고 며칠씩이나 배를 묶어 둬 부두를 마비시키는 게 말이 됩니까”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류대란으로 비상인 부산신항 상황을 너무 모르고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행사” “40분가량의 행사를 위해 부산신항 터미널 운영사들은 큰 희생을 치렀다” “다목적부두는 이틀간 선석을 아예 비워 이 기간에 배가 단 한 척도 왕래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말할 때 나오는 뒷배경을 멋지게 만들기 위해 세워둔 HMM의 한울호는 이틀이나 선석에 대기해야 했다” “한울호는 반나절이면 컨테이너를 모두 싣고 출항할 수 있는데 청와대 요청으로 이틀이나 가만히 머물게 했다”고 썼다.

기사를 읽고 제일 먼저 탁아무개씨 얼굴이 떠올랐다. ‘또 이벤트 쇼 한판 했구먼’하고 생각했다.

기사가 나오자 국민의힘쪽 대선 예비후보인 유승민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대통령을 겨냥해 “기업 괴롭히는 쇼 말라”고 비판했다. 이를 받아 여러 언론이 ‘유승민, 대통령에 직격탄’이란 식으로 확대재생산했다.

해양수산부는 7월1일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매경 보도를 반박했다. 해수부는 “한울호는 반나절이면 컨테이너를 모두 싣고 출항할 수 있는데 청와대 요청으로 이틀이나 머물렀다”는 매경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또 해수부는 행사 기간 다목적부두가 이틀간 선석을 비워 정상운영을 하지 못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도 했다.

해수부 자료만 보면 매경이 ‘기레기짓’을 한 걸로 보인다. 그러나 매경은 7월2일 밤 ‘부산신항 선석 2일 아닌 3일 멈춰 … 해수부 해명 사실과 달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또 썼다. 부산신항 홈페이지에 나오는 ‘선석 배정현황’을 보면 지난달 29일 대통령 참석 행사가 열린 문제의 M-3 부두는 지난달 26일 오후 5시부터 29일 오후 7시까지 사흘간 작업을 못 했다.

진실은 매경과 해수부 주장 사이 어디쯤 있다. ‘40분 대통령 행사 위해… 이틀간 멈춘 부산신항’이란 매경의 지면기사 제목을 보면 대통령 행사 때문에 부산신항이 모두 멈춰 선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행사가 열린 M-3 선석 바로 옆 M-1, M-2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부산신항 전체가 멈춘 건 아니다. 그렇다고 대통령 연설 뒷배경으로 첫 출항하는 한울호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 언론과 집권 세력이 이렇게 싸우는 사이,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이 죽었다. 7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두 번이나 국방장관을 지냈던 럼즈펠드는 대표적인 네오콘이었다. 그는 두 번째 국방장관 때인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이끌었다.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바그다드를 침공했지만, 어떤 대량살상무기도 나오지 않았다. 몇 달 안에 끝난다던 전쟁은 몇 년을 끌면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냈다.

럼즈펠드는 회고록에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포로학대 사건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라고 밝혔다. 우리 언론엔 2004년 5월 벌거벗은 채 묶인 이라크군 포로들을 담배를 문 채 조롱하는 미군 병사 사진 수백장이 소개되면서 병사의 개인 일탈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사진은 당시 67살의 시모어 허시 탐사기자가 1년 넘는 추적 끝에 포로학대가 미 국방부 포로 심문 매뉴얼에 나오는 공식 절차였다는 걸 폭로한 기사의 일부였다. 늘 작은 것에만 흥분하는 한국 언론은 당시 ‘뉴요커’에 실린 허시 기자의 기사에 주목하지 않았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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