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귀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국장

6월30일과 7월1일 이틀간 국제운수노련(ITF)이 주최하고 공공운수노조·화물연대본부·호주운수노조(TWU)·뉴질랜드 퍼스트유니온(First Union)·브라질운수물류노조연맹(CNTTL)이 주관하는 ‘안전운임 안착 및 세계 확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외국 노동조합과 참가자들이 한국에 방문하지 못하고 화상으로 함께했으나, 그럼에도 35개국 13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행사였다.

안전운임제 도입은 화물연대의 18년 투쟁 성과다. 동시에 호주운수노조를 비롯한 국제연대의 성과이기도 하다. 화물연대는 2003년부터 화물노동자의 적정운임을 정부가 고시할 것(표준요율제 도입)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개인사업자인 화물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법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2012년 호주에서 전국적인 안전운임법이 도입되면서 한국 정부의 논리가 무너졌다.

화물연대는 호주운수노조의 발자취를 확인하며 자신감을 얻고, 또 정부를 설득할 수 있었다. 또한 이미 여러 주에서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하고 있던 호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운임과 안전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며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후 몇 차례의 화물연대 파업을 거쳐 사회적 논의 끝에 마침내 2018년 3월 한국에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다. 호주운수노조를 비롯한 국제적 연대가 안전운임제 도입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국제심포지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됐다. 국제운수노련을 비롯해 전 세계 화물노동자들의 연대로 한국의 안전운임제를 지켜 내는 한편, 안전운임제를 도입하고 시행 중인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안전운임제를 확장하기 위한 기획인 것이다. 특히 화물연대로서는 더욱 뜻깊은 자리다. 안전운임제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국제적인 연대를 돌려주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된 현재 시점에서 한국은 가장 발전된 전국적 안전운임제를 쟁취한 나라다. 호주에서 2012년 도입된 전국적인 안전운임법은 2016년 보수정당의 ‘안전운임법 철회 법안’의 기습 통과로 사라졌다. 이제 가장 선봉에 서서 안전운임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제도 도입과 시행 과정의 경험을 세계에 공유할 책임이 한국으로, 화물연대로 넘어온 것이다.

심포지엄에서 참가자들은 한국의 안전운임제를 “모범적인 제도이며 세계적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뉴질랜드·아르헨티나·인도 등 외국 노동조합에서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안전을 증진시키기 위해 안전운임제 도입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한국의 안전운임제가 전 세계 화물노동자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적 모범이 되기 위해 한국이 배워야 할 것들도 여전히 많다. 호주에서는 비록 전국적인 안전운임제는 폐기됐으나 화주(대기업)와 호주운수노조 간 협약을 통해 안전운임이 보장되고 있다. 심포지엄 2일차에 진행된 호주 패널토론에서는 노·사·정을 대표해 토론에 참여한 모두가 입을 모아 안전운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호주 유통업체 콜스(Coles Australia)에서는 산업경쟁력을 위해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호주운수노조와 노동조건·안전을 증진시키는 협약을 체결했으며 운수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운수업체 대표로 토론에 참여한 린폭스 로지스틱스(Linfox Logistics Australia)에서는 “화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전문적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고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도록 안전운임을 지지한다. 우리는 임금 삭감을 통한 비용 경쟁이 아니라 서비스 질로 경쟁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국민의 안전과 화물노동자의 권리를 사회적 가치로 인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안전운임을 도입하고 있는 호주 사례는 안전운임제를 도입했음에도 여전히 적용 범위와 효과를 둘러싸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안전운임제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한국 안전운임제는 3년 일몰제로 도입돼 법 개정이 없는 한 2022년에 소멸된다. 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시멘트 품목 운송에만 한정해 도입됐으므로 40만대에 이르는 화물차 중 2만6천대만 한정적으로 적용받고 있다. 화물연대는 이 같은 제도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일몰제 폐지 법안을 이미 국회에 제안했으며 하반기 안전운임 적용 차종·품목 확대와 제도 안착을 위해 총력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틀간 이어진 안전운임 국제심포지엄은 국제운수노련을 필두로 전 세계 화물노동자가 안전운임의 세계적 확산을 위해 공동으로 투쟁하고 연대할 것을 결의하며 마무리됐다. 특히 10월에 한국과 호주에서 각각 안전운임의 확대를 위한 총력투쟁이 예정돼 있으므로 이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강조했다. 안전운임을 매개로 전 세계 화물노동자들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이제 안전운임은 전 세계적인 요구가 됐다. 시민의 안전과 화물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물류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가 된 것이다. 안전운임제를 세계에 확산하는 긴 여정에서 한국 안전운임제는 이미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뒤따라오는 세계 운수노동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화물연대도 안전운임제 발전을 위해 쉼 없이 투쟁하고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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