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에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신설됐다. 산업안전보건정책 수립과 산재예방감독 기능을 확대·강화함과 동시에 내년 1월 시행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집행을 담당한다. 2023년 예정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까지 징검다리 역할도 하게 된다. 산업안전보건본부 신설을 맞아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어 봤다.<편집자>

정책 수립과 감독, 선순환 고리 만들어야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산업안전보건정책 수립과 산재예방감독을 집행하게 될 산업안전보건본부 출범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행정에 있어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또한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기존의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은 이를 담아 내기에는 ‘작은 그릇’이었다. 고용노동부가 근로기준정책국과 근로감독정책단을 운영하고 있는 것과도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기존 1국 체제에서는 안전보건정책 수립과 산재예방감독이 일원화돼 있기는 했지만 밀려드는 각종 업무로 어느 하나 충분한 역할을 해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산업안전보건본부 신설로 비로소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정책 수립과 감독 집행이라는 ‘두 개의 날개’를 갖추게 된 셈이다.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신설에 즈음해 몇 가지 기대 섞인 바람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산업안전보건본부 출범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산업안전보건 노사정 협의체’를 마련하고 이를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다른 분야는 안 그럴까 만은 특히 산업안전보건에 있어 노사의 역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노사의 인식과 협조가 없는 한 노동현장의 산재예방은 요원한 문제일지 모른다. ‘산업안전보건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안전보건 정책과 집행의 인식을 공유하고 지평을 넓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산업안전보건정책 수립과 산재예방감독 간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정책수립과 감독정책이 ‘국 간 칸막이’ 속에서 협업 없이 이뤄지거나 따로 노는 엇박자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책수립에서는 효율적인 예방감독이 고민돼야 하고, 예방감독에서는 감독집행상의 미비점이 정책수립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산업안전보건정책과 산재예방감독의 효과성에 대해 주기적으로 냉철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셋째, ‘산재예방감독 중장기계획’이 제시돼야 한다. 이제까지의 산업안전보건감독은 ‘사후약방문’이었다는 점을 크게 부인하기는 어렵다. 산재 사망사고나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을 대상으로 법규 위반사항을 점검하고 처벌하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설마 우리 사업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겠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고, 이는 안전보건기준 준수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중장기 계획’을 통해서 전체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감독 의지가 표명돼야 한다. 참고로 최근 개정된 독일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매년 사업장의 최소 5% 이상에 대한 최소감독비율(2026년 이후)을 법률에 규정했다.

끝으로, 산업안전보건본부 내에 신설되는 조직 중에서는 중대산업재해감독과와 산재예방지원과에 눈길이 간다. 중대산업재해감독과는 내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감독관의 수사 역량도 갖춰져야 하고, 법률적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도 적지 않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예방이라는 측면보다는 사후처벌법으로의 성격이 보다 강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산재예방지원과가 도모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산재발생은 처벌의 관점보다는 예방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보다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성 평가 내실화를 비롯한 사업장 내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 수립 등 산적한 문제가 있다. 사업장 내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 수립은 다른 선진국이 중점을 두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정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아프지 않고 일하는 삶 등 안전과 보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신설된 산업안전보건본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신뢰받는 조직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외형 확대에 만족해선 안 돼, 청 설립 비전 가져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는 재해예방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큰 산재예방행정조직과 인원을 갖게 됐다. 문제는 방대한 산재예방행정조직을 구축했다고 해서 산재예방 효과를 자동적으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자 1만명당 근로감독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의 4배, 일본의 3배가 넘는다. 준정부조직인 안전보건공단 직원수까지 감안하면 우리나라 산재예방행정인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따라서 정부는 산재예방행정 조직과 인원이 양적으로 확대한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산업안전보건청이 원래의 취지대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산재예방행정 시스템을 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이를 착실히 이행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하는 취지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청 설립에 대한 원칙과 비전 없이 행정조직의 단순한 외형적 확대에 머문다면 산재예방 효과는 거두지 못한다. 환경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규제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재예방행정조직(보건안전청)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로벤스 보고서와 영국의 산재예방행정체계 작동원리와 배경을 배워야 한다. 특히 현재 많은 부처로 난립해 있는 규제와 감독을 통폐합해야 한다. 로벤스 보고서에서 가장 강조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로벤스 위원회가 출범했던 영국의 1972년 상황보다 더 많은 행정기관으로 복잡하게 산재해 있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고가 날 때마다 법규제가 중복적이고 비효율적으로 확대·재생산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무분별한 규제가 산재예방에 큰 질곡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청 설립 취지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부처와의 기능조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준정부기관 안전보건공단과의 기능조정도 큰 숙제다. 이를 소홀히 하면 산업안전보건본부(청)와 안전보건공단의 기능은 상당 부분 중복돼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비대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청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 모두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본부와 안전보건공단을 합쳐 놓은 조직으로 단일화돼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본부 내 부서 간에 기능이 중첩되고 있는 것도 이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나중에 인위적인 고용조정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양 기관의 업무를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가 필수적이다.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업무기능 면에서 감독과 처벌에 다분히 기울어져 있는 부분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역량 강화보다는 사후제재에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청 설립을 들고나온 배경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라는 점에서 그 연장선상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현재 산재예방행정이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규범력이 땅으로 추락한 산업안전보건법규를 현실적이고 예측가능한 기준으로 개선하는 것도 산업안전보건본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현재는 수범자가 도저히 지킬 수 없거나 실효성이 없는 법기준이 적지 않고, 기반 조성에 해당하는 부분은 방치돼 있는 상태다. 청이 출범하기 전에 이 과제를 게을리하면 청을 설립한 효과는 더디고 퇴색할 수밖에 없다.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하면서 양적 확대에 안주한 채 이상에서 지적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산업안전보건 수준을 높이기는커녕 산업안전보건행정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는 지금 산업안전보건행정의 역사에서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