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 감소 일환으로, 사업장 내 위험상황이 발생하면 전국 대표전화인 1588-3088 ‘위험상황 신고전화’로 신고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사업장에서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

휴대전화는 필수품이다. 물론 운전 중이거나 작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운전이나 작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이를 어겼을 때 단속을 하거나 걸맞은 처분을 해 해결할 수 있다. 위급상황 대응을 고려한다면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금지할 일은 아니다.

쿠팡 물류센터 대다수는 작업장에서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해, 출근할 때 지정 장소에 휴대폰을 보관하도록 한다. 6월17일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이 화재를 발견한 노동자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하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가진 관리자에게 신고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동자를 존중하지도 않고 그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도 없었던 관리자는 그 요청을 무시했고, 그 때문에 화재 신고가 지연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위기상황은 초기 대처가 매우 중요한데 그 잠깐의 지체가 화재 조기진압을 어렵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 누리집 민원마당에는 ‘회사가 근로자 동의 없이 개인휴대폰을 지정보관함에 보관하고 퇴근할 때 가져가라고 하는데 가능한지’가 질문으로 올라와 있다. 그에 대한 노동부의 답은 ‘업무상 보안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하거나 노사 간 합의 등에 의해 진행되면 가능할 수도 있으나, 특별한 사유 없이 사용자측에서 일방적으로 핸드폰 반납을 요구하고 있다면 인권위원회 등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는지 문의하라’고 답하고 있다. 노동부는 일방적 휴대전화 금지가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답변의 책임을 인권위로 떠넘긴 것이다.

국가인원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휴대폰을 수거하는 것과 관련해 ‘일과 중 휴대전화 소지와 사용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는데 학교의 편의를 위해 일괄 수거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본 것이다. 사업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보안이 문제라면 휴대전화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는 등 조치를 취하면 되고, 작업 중 사용이 우려되면 업무시간 중 사용을 제재하는 규칙을 만들면 된다. 그렇지 않은 일괄 수거는 인권침해가 될 수밖에 없다.

쿠팡은 출근 때 소지품을 검사해 허용하지 않은 물품 반입을 금지시킨다. 물류센터는 매우 넓기 때문에 휴게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지정된 보관소까지 가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급하게 연락을 받아야 할 일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쿠팡의 휴대전화 금지 지침은 일방적이다. 쿠팡은 안전·보안을 명분으로 삼지만, 휴대전화 소지가 가능한 일부 물류센터들이 보안이나 안전에 더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휴대전화 소지가 가능한 사람을 정하는 기준도 매우 자의적이다.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라’는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관리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안이다.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사고를 계기로, 쿠팡의 노동현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과로사를 부르는 과도한 심야노동, 냉난방도 안 되는 열악한 작업장, 사람과 물건과 도구가 섞여 일하는 위험한 작업현실이 많이 지적됐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그동안 왜 드러나지 않았는가. 왜 이 현실을 드러낼 때 증거가 아니라, 떨면서 증언하는 목소리에만 의존해야 했는가. 왜 쿠팡은 이 문제들이 나타날 때마다 단호하게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할 수 있는가. 현장에서 휴대전화 소지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현장을 ‘증거’로 보여줄 수 없으므로 쿠팡은 문제를 부인하거나 증언하는 노동자를 억압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노동자들이 현장의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때 좋은 일터가 된다. 문제를 드러내야 해결 방법도 생긴다. 노동자들을 대상화하고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기업은 현장의 문제를 더욱 쌓을 뿐 문제해결 능력을 갖기 어렵다. 쿠팡이 조직문화를 바꿔 지금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작업 중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휴대전화 금지 지침을 풀어야 한다. 쿠팡 물류센터의 휴대전화 소지 금지가 ‘일방적이고 통제 중심적인 쿠팡의 조직문화’를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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