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를 둘러싸고 파업 중단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중단했다. 어이없다. 그러나 더욱 어이없는 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조의 모습이다. 고객센터 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 10일부터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투쟁에 들어갔는데, 정규직 노조에서는 이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강준만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거짓말이다”는 파격적인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하에서 비정규직 현황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악화됐다면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모든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허황한 꿈에 가까웠다”고 주장했다. 또 “진보는 책임윤리를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우선 당장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거짓말이라는 걸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희망고문’을 중단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덜어 주는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했다.

30년 전 소련이 무너지자 모두들 지배와 착취가 없는 노동해방·인간해방 세상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며 자본주의에 투항했다. 이들은 대거 사회개량주의로 변신하더니 이번엔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사회개량마저 버리자고 한다. 출세주의자야 그렇다 치고 지조 있는 지식인 강준만 교수마저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은 놀랍다. 그의 계급성을 보여준다. 한번 따져 보자.

비정규직을 그대로 두고 차별을 줄이는 것은 현실적인가?

기업이 비정규직을 두는 것은 노동력가치 이하로 임금을 지급해서 이윤율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는 이윤율 저하 시대 자본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현존 천민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비정규직 철폐는 실현될 수 없다. 그러면 비정규직은 그대로 두되 “비정규 노동자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덜어 주는 일”은 현실적인가? 그것 또한 자본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으로 비현실적이다. 비정규직을 두되 차별적으로 초과착취하지 않으려면 굳이 비정규직을 둘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 철폐는 비현실적인가?

강준만 교수가 경의를 표해 마지않는 박용진은 이렇게 말한다. “비정규직을 ‘전부’ 철폐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그 누구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고,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는 건 토머스 모어가 설파한 유토피아의 도래일 수도 있다”고. 그렇다. 현존 천민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그러자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현 지배체제하에서는 그것만이 아니라 주 40시간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노동악법 철폐, 재벌 3.5법칙을 없애는 것들 모두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민주주의 혁명으로 천민자본주의 파쇼 체제를 변혁하면 그것들은 손바닥 뒤집기만큼 쉽다.

하기야 그들은 민주변혁 또한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노동자가 자본의 지배와 착취에서 해방돼 사회와 역사의 주인이 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더욱 허황된 꿈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에게는 그 꿈이 필수적이며, 또 과학적 통찰에 의하면 그것은 머지않은 장래의 현실이다. 다만 지난 30년간 노동운동이 그 꿈과 통찰을 버린 결과 노동자들이, 특히 젊은 세대 노동자들이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획돼 있는 것이 안타깝다.

최근 딜로이트 그룹에서 발표한 ‘2021 밀레니얼과 Z세대 서베이’에 따르면 이 세대는 부의 불평등을 심각한 사회이슈로 생각하며, 한국의 경우 글로벌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인 73%(밀레니얼 세대), 76%(Z세대)가 이에 동조했다. 그런데 글로벌 MZ세대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MZ세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재분배 정책과 규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다. 그 주된 원인은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대변인인 정치인·지식인들의 이념공세에 있다. 하지만 이들에 맞서 혁명적으로 투쟁하지 못한 노동운동, 특히 노동정치운동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