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국제공항 소방대에서 일하다 해고된 송군섭씨가 인터뷰를 마친 뒤 유니폼을 벗어 정리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아침이면 공항행 버스를 탄다. 해고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인천국제공항 소방대에서 일하다 해고된 송군섭씨가 인터뷰를 마친 뒤 유니폼을 벗어 정리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아침이면 공항행 버스를 탄다. 해고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인국공 사태’를 이야기할 때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힌 이 사진이 소환됩니다. 언론에서 불쑥,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도 불쑥 나왔죠. 그때마다 스트레스입니다. 당시 생각이 나서요. 지금은 무직자 아닙니까.”

송군섭(53·사진)씨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힌 사진을 보자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며 인천공항에 방문했을 때 송씨는 그 자리에 참석해 바로 옆에서 그 약속을 들었다. 사진에는 약속을 들은 직후 웃고 있는 송군섭씨의 모습이 있다.

그는 지금 직장이 없다. 16년간 인천국제공항에서 소방직으로 일해 온 송씨는 지난해 5월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 공개채용 과정에서 탈락했다. 누군가는 떨어지도록 만들어진 시험이었다. 관리직 정원이 19명에서 12명으로 줄어서다. “고용승계를 통한 고용안정”이라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지켜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할 때 옆에 있었던 송씨는 지금은 공사 본관 앞에서 매일 피케팅을 하고 있다.

임시 자회사 정규직되자 에어컨 구매
“더 나은 삶 꿈꿨던 날들”

송군섭씨는 2017년 5월12일, 아침 9시에 출근하자마자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소방대에서 누군가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떠밀리듯 자리로 나갔다. 앉은 곳이 문재인 대통령 옆자리였다. 비정규직들이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에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보상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로 웃음이 났다.

송씨는 소방대 경력이 30년이다. 공군에서 14년간 소방구조(당시 항공소방) 보직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중사로 전역했다. 이후 인천국제공항 소방대원으로 입사해 16년을 일했다. 2003년 8월 입사했다. 2010년에 3급 관리직으로 승진했다. 분기마다 성적 좋은 사람들을 5배수 선발한 뒤 인사위원회 심사를 거치는데, 이 과정을 통과했다. 송씨를 포함한 19명은 모두 이 같은 과정을 거쳐 관리직이 됐다.

정규직 전환은 순조로운 듯했다. 2017년 9월13일 공사의 자회사인 인천공항운영관리㈜가 설립했다. 정규직 전환 전까지 전환 대상자들을 임시로 관리할 회사였다. 그해 12월26일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과정을 협의한 1기 노·사·전문가 협의회 결과가 나왔다. 관리직 이상은 노·사·전 협의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의견도 반영할 수 없었다. 협의회가 마련한 합의서에 따르면 관리직은 2017년 5월20일 이후 입사자들과 함께 경쟁 채용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탈락자는 별도 회사 채용을 통해 고용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관리직들을 안심시켰다. 2018년 1월1일 송군섭씨는 용역업체에서의 계약을 끝내고 인천공항운영관리로 들어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인천공항운영관리는 2019년 인천공항시설관리로 사명을 바꿨다.

그곳에서 송씨는 정규직을 ‘맛봤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중요했지만, 그는 150만원 상당의 복지포인트가 더 좋았다고 했다. 복지포인트로 에어컨을 샀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던 그였다. “이때까지 받아 본 적 없는 수당이었습니다. 딸이 진짜 좋아했어요. 임시로 편제된 정규직도 이렇게 좋은데, 직접고용 정규직은 얼마나 좋을까 꿈꾸게 됐죠.”

송군섭씨는 이 말을 하며 활짝 웃었다. 기자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인 웃음이었다.

탈락자 나올 수밖에 없는 공채 구조
‘공정’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지난해 5월 공사가 소방직 공채를 했다. 공사는 공개경쟁채용 공고에서 관리자 직군 정원을 12명으로 줄였다. 조직 구조를 바꾼다는 이유였다. 19명 가운데 7명 퇴직을 확정한 셈이다. 필기시험과 체력검정,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심사, 1차 면접, 2차 면접 및 종합면접 전형을 거치게 했다. 관리직들은 술렁였다. 눈앞에 왔던 희망이 사라져 갔다.

송군섭씨는 6월28일 악력 기준 미달로 체력검정에서 탈락했다. 공사에서 직접고용하기로 했던 소방직과 야생동물 통제요원 재직자 236명이 정규직 전환 채용에 응시해 47명이 탈락했다. 송씨와 같은 소방대로 좁혀 보면 소방대 관리직과, 2017년 5월20일 이후 비관리직 입사자 59명이 공채에 응시해 이 중 28명이 떨어졌다. 탈락률 47.5%다. 8월17일 인천공항시설관리는 공사에 소방업무를 넘겼고, 공채 합격자들은 인천공항시설관리에서 공사 소속으로 바뀌어 기존 업무를 이어 나갔다.

정규직 전환 희망은 사라지고 싸움이 시작됐다. 송씨와 같은 관리자들은 공채가 시작된 이후 필기시험을 치르기 전인 6월15일 인천지역일반노조에 가입했다. 그날 인천지법에 공채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했다. 인천지법은 7월30일 기각했다. 공사 공채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어긋난다고 보기 어렵고, 소방대원이 공채절차 중지를 요구할 권리도 없다고 봤다.

그해 7월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관리직 정원이 축소된 상태에서 기존 경력자에 대한 배려나 탈락자에 대한 구제방안 없이 실직한 것은 부당하니 구제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취지였다. 국민권익위는 관리직 구제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공사가 소방직을 직접고용한 후부터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피케팅도 공사 본관 앞에서 하고 있다. 그해 9월부터는 청와대 분수대 앞 1인 시위도 함께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병행했다. 공채에서 떨어진 소방대 관리직 23명과 야생동물 통제관리직 2명이 참여했다. 올해 1월14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2018년부터 지난해 8월17일까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을 맺은 것을 두고 이들의 지위를 무기계약직으로 본 것이다. 인천공항시설관리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초심이 유지됐다. 사측은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방대 업무가 공사로 넘어간 만큼 복직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송군섭씨가 공채 탈락 이후부터 이제껏 해 온 일을 이야기하던 도중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1인 시위와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해 왔지만 그는 여전히 해직자다. 유니폼 왼쪽 팔뚝에 계급을 나타내는 약장 자리가 비어 있다. <정기훈 기자>
▲ 송군섭씨가 공채 탈락 이후부터 이제껏 해 온 일을 이야기하던 도중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1인 시위와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해 왔지만 그는 여전히 해직자다. 유니폼 왼쪽 팔뚝에 계급을 나타내는 약장 자리가 비어 있다. <정기훈 기자>

희망 보이나 했는데
“또다시 뒤통수”

이들의 싸움에 빛이 보이는 듯했다. 올해 2월 새로 임명된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인국공 사태’는 노조와 대화해서 해결하겠다”고 했다. 4월에는 공사와 노조가 간담회를 했다. 공사는 4월27일 노조에 공문을 통해 2021년 상반기부터 2022년 말까지 공사 내 3개 자회사 신규채용에서 종전의 자회사 근무경력을 인정해 한시적으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2021년 상반기 소방직무 관리직 신규채용에서는 체력검정 전형을 직무 상황판단과 관리직 소양 심사로 대체하고, 2021년 하반기 소방직무 비관리직 신규채용에서는 경력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군섭씨는 복직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싸움이 사회 인식을 바꿨다고 느꼈다. “싸움 전에는 막말로 우리를 ‘기회를 훔치는 도둑놈’ 취급했죠. 지금은 ‘이건 아니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봐요.”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뀔 줄로 알았다. “공사와도 대화했습니다. 공문도 받았고요. 이제 열렸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그만해 달라는 공사의 말에 4월30일 그만뒀습니다.”

믿음은 또다시 배신당했다. 6월15일 공사는 비관리직 14명과 소방대장 1명을 뽑는다는 2021년 상반기 방재직(소방직) 공개채용 공고를 냈다. 송씨와 같은 관리직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4월의 공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또 당했다, 또 뒤통수 맞았다.” 송씨는 생각했다.

공사는 하반기 공채에서 공문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관리직군은 현재 정원이 모두 찬 상태”라며 “비관리직 직군에서만 결원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결원은 33명인데 14명만 뽑는 것은 하반기 공채에서 4월에 공문에서 약속한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나의 삶 인정해 줘라. 그게 공정이다”

송군섭씨는 이번달부터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맞벌이 하던 배우자도 일손을 놓고 있다. 당장 직업을 구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그는 ‘인국공 사태’에서 불거진 ‘정규직 시험을 치고 입사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의견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경력자의 경력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 그가 말하는 공정이다. 입사 이후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마라는 얘기다.

“소방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냥 자회사 가겠습니다. 뭘 해도 하겠습니다. 다만 경력만 인정해 주세요. 열심히 해서 관리직이 됐는데 신입공채로 들어가라니요. 이건 노력에 대한 배신이죠. 이게 고용보장을 이야기했던 정부 가이드라인이랑 앞뒤가 맞는 건가요.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오지 말지. 그러면 저는 지금도 일하고 있겠죠.”

그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믿음이 계속 깨지며 사회에 대한 신뢰도 잃고 있다.

“언론 인터뷰는 이제 안 하려고요. 해봤자 바뀌는 게 없습니다. 경력 인정받고 복직하면, 그땐 인터뷰 백 번이라도 하지요.”

송군섭씨가 인천공항운영관리㈜에 들어간 뒤 복지포인트로 에어컨을 샀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활짝 웃던 그가 허탈한 표정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송군섭씨가 인천공항운영관리㈜에 들어간 뒤 복지포인트로 에어컨을 샀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활짝 웃던 그가 허탈한 표정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