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나는 그물이다

저 사람은 왜 만들 때나 만든 뒤나 가입과 탈퇴를 반복할까. 저분은 왜 자주 토라지고 빠질까. 쟤는 왜 빠지는 사람을 챙기고 열심히 참여할까. 어떤 모임은 화기애애한데 어떤 모임은 왜 자꾸 삐거덕댈까. 호흡이 척척 맞던 그는 왜 돌아섰을까. 노동현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드러난 이유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하곤 했다.

자기 캐릭터(특성)에 어울리지 않는 스토리를 쓰면 망하거나 꼬인다. 자신을 알아야 좋은 얘기를 만든다. 자기를 파악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개인 성격과 운명을 보는 사주팔자는 오래된 방법이다. 혈액형과 성격은 별 상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에도 여전히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하는 얘기를 듣는다. 이제는 개인성격 분석방법으로 MBTI(성격유형검사)가 널리 퍼져 있으나, 성격분석이 개인에 제한된 호기심 충족에 그치는 경우가 꽤 있다.

별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연결되고 결합된 것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다. 생태계에서 태어난 우리는 혈연으로 맺은 가족 친지, 학연·지연으로 맺어진 친구, 직업적으로 맺은 직장관계 속에 산다. 우리는 연결된 관계의 그물망에서 살고 관계의 그물망을 이룬다. 나는 그물이고 네트워크다.

접속망 경쟁

어떤 포털과 누가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는가를 둘러싼 경쟁보다 오래된 접속 경쟁이 있다. 누구는 다양한 관계망 중에 혈연에 열심히 접속해 가족주의와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로 나아간다. 그물망 중에 직장의 상하관계를 당기고 확장하면 산업과 사회의 계급관계가 선명해진다. 젠더에 접속하면 성차별이 부각된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관계에 자꾸 접속시켜 진보와 보수를 가른다.

우린 많은 관계를 공유하지만 완전히 같은 관계망을 가질 수 없다. 성·민족·계급이 같아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른 이성이나 동성과 사귄다. 부모형제가 다르고 다른 산업과 기업, 다른 계층에 속한다. 80억에 이르는 인류 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 쌍둥이도 친구나 연인이 달라 완전하게 동일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꼭 ○○이랑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다 치우고 먼저 가요. 우리는 7시쯤 일어나죠.”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과 수련회를 몇 번 했던 노조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일찍 일을 시작하는 교대제 사업장 사람과 더 늦게 일을 시작하는 사업장 사람이 다르다. 이런 단순한 것에서부터 미세한 성향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노동을 닮는다. 우리를 둘러싼 관계는 사람의 미묘한 성향 차이를 만든다. 아쉽게도 자본주의 분석은 많지만 노동에 따른 성향 차이 분석은 별로 없다.

그물에 맺힌 감정

우리는 여러 관계를 경험한다. 서로 존중하는 따뜻한 관계도 있고 차별하고 멸시하는 관계도 있다. 어떤 것이 더 강하게 내면화했는가에 따라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강렬한 사상가였던 마르크스가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심리학자 아들러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최초로 개념화했다고 한다. 인간은 다양한 관계 속에 상호작용하면서 열등감을 가질 수도 있고 우월감을 내면화할 수도 있고 자존감을 더 강하게 품을 수도 있다. 바로 이 세 감정이 사람을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경쟁과 서열이 내면화된 사회에서 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쓰려는 노조에게 매우 유용하다.

열등감은 자기비하와 질투, 그로 인한 뒷담화와 혐오, 강자에 대한 굴종과 공포, 방어적 과잉행동과 가깝다. 우월감은 자기과시와 약자 차별, 타인을 낮춰 보고 가르치려는 훈시와 억압, 자신을 과대포장한 자만, 타인에 대한 냉대와 연결된다. 자존감은 자기 존중과 타인 존중, 모든 생명과 생태계 존중, 성찰과 공감, 연대와 공존에 더 잘 어울린다. 물론 이런 감정들은 무 자르듯 딱 나눠지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조금씩 섞여 있다.

10여년간 무노조기업 노동자를 만나며 왜 어떤 이들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쉽게 돌아서는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경쟁적 관리시스템이 내면화되면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섞인 ‘우열감’이 강하다. 과시욕과 질시, 믿음과 의심이 늘 교차한다. 자기 상태를 자각해 관리시스템에 억눌린 내면의 기지개를 펴고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망에 깔린 알고리즘

자존감이란 용어가 퍼져 있다. 그러나 자존감과 자존심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흔히 말하는 자존심은 비교 경쟁에서 생기는 우열감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고 자존감은 홀로 만드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관계망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생긴다.

경쟁교육은 우등생과 열등생을 끊임없이 나눈다. 사회에 나오면 소득과 연봉에 따라 서열을 나눈다. 기업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고 원청과 하청으로 서열화한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서열을 더 확장하고 있다. 우리의 사회관계망에 쉼 없이 우열감을 만들고 자존감을 삭제하는 알고리즘이 깔려 있다. 이런 사회에서 서로 존중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관계로 변화하지 않고 몇 번의 교육으로 자존감을 높이려 한다면 우습다.

능력주의라는 새 알고리즘이 등장했다. 권력으로 줄 세우던 독재, 돈으로 차별해 온 헬조선을 거쳐 ‘능력=권력’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 공채를 통해 입사한 정규직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이면에 ‘우리가 우월하고 너희는 열등하다’는 우열감은 없을까. 여성이 부각되자 불편한 남성의 열등감이 여성혐오로 나타나지는 않는가. 우월한 지위를 되찾으려는 심리가 능력주의를 앞세운 정치인과 결합하고 있지 않은가. 보편적 권리로서 차별철폐 주장과 능력에 따른 차별 주장이 충돌하는 요즘, 내면에 깔린 심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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