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수 축구평론가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스포츠선수들의 ‘노동자성’을 강조했다. 고용의 형태와 일(운동)의 성격이 일반적인 경우와 다소 다른 측면이 있지만, 선수들이야말로 몸을 직접적으로 활용해 특정한 업무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성이 충족되고 있으며 그것의 인정과 존중에 의해 선수들의 노동조건 개선은 물론 장차 직업선수의 길을 걷고자 하는 수많은 ‘학생선수’의 장래가 밝아질 것이라고 썼다. 이번에도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여러 억압적인 현황에 의해 선수들이 스스로 결정해 단체를 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당한 운동과 투쟁을 전개한 역사는 매우 짧다. 지금도 꽤 많은 선수와 그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선수=노동자’라는 주장에 회의적인 게 사실이다.

특별하다는 인식, 노동자에 대한 편견

이는 과거 1970년대에 ‘산업역군’이 노동자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 현상이고 사무직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집합적으로는 자신을 법정 노조에 ‘가입자’라고 여기지만, 개인적 감수성으로는 자신의 기본적 정체성을 ‘노동자’로 여기는 것을 꺼리는 현상과 같다. 즉 운동선수는 특별히 선발된 선수고, 다른 일이나 노동과는 다른 고도의 전문영역이며 그것도 프로선수가 되거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성공과 영광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노동’이라고 여기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하기 쉽다.

여기에 또 ‘스포츠’에 덧씌워진 과도한 언어들이 작동한다. 이를테면 ‘스포츠는 순수하고 어린이에게 꿈을 주고 국가와 인류에 희망찬 미래’를 운운하는 언어들이 작동하면, 바로 그러한 숭고한 행위가 ‘노동’이 되고 그것을 하는 자신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내면적으로 승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노동에 대한 이해 부족, 노동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노동자성에 대한 그릇된 판단 등은 당사자들의 노력 부족이라기보다는 선수들에 대한 교육, 아니 그 이전에 우리나라 중고교 과정에서 노동교육 자체가 거의 부재한 것에 기인한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 4월12일, 민주노총을 포함한 162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의 권익과 노동조합의 역할 등에 관한 교육을 학교 정규수업에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부족한 노동교육, 그마저 배제되는 학생선수

일종의 계기수업 방식으로 노동교육이 극히 부분적으로 이뤄진 적은 있으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동 관련 교육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코로나 이전의 상황에서는 학생 수백 명을 강당에 모아 놓고 흡사 ‘민방위교육’ 하듯이 무미건조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노동에 관한 교육 내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반영한 교과서도 드문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학생이 사회에 진출하기 이전에 노동의 의미, 노동자 권리, 노동자성 획득과 실천에 관해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특히 ‘학생선수’들은 그런 시간조차도 ‘열외’가 돼 훈련하고 대회에 나가느라 최소한의 정보도 얻지 못하게 된다. 2022년에 국가교육과정이 개정되는데, 정규수업 교과서에 노동교육의 내용을 담아 노동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알려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급선무의 사회적 과제다.

한편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권리 획득은 기본적으로 상당한 운동과 주장과 호소와 투쟁을 통해 이뤄지지만, 어떤 경우에는 법이나 제도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급속히 전개될 때도 있다. 본인이 그러한 경우에 포함되는 줄 전혀 모르고 있다가 특정한 사건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한순간에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4월22일 근로복지공단은 고 최숙현 선수의 유족이 낸 유족급여 등 청구 사건에 대해 업무상 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했다. 최숙현 선수는 전 경주시청 소속 철인3종경기 선수로 지도자와 선배들의 거듭된 가혹행위를 폭로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중요한 것은 그 ‘가혹행위’가 상당 부분 훈련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훈련은 경주시청에 소속(고용)된 선수(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라 할 것이다. 그 훈련(노동 업무) 과정에서 지도자는 해외 전지훈련 도중에 “3일 굶자. 잘못했을 때 굶고 책임지기로 했잖아” “이빨 깨물어!(찰싹) 야! 커튼 쳐” 등 최 선수에 대한 가혹행위를 한 정황이 있다. 또 팀 관계자는 최 선수의 체중이 늘자 빵 20만원어치를 억지로 먹게 해 토하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가혹행위로 인해 최 선수는 훈련일지에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체중을 다 뺐는데도 욕은 여전하다’ 등 괴로운 심정을 기록했다.

산재 인정받은 고 최숙현 선수,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

성적을 내기 위한 지도자의 다소 과한 훈련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며 정확히 한 개인을 특정해 거듭된 행위라는 점에서 이는 일체의 다른 해석이 필요 없는 ‘훈련을 빙자한 가혹행위’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근로복지공단 판정으로 인해 고 최숙현 선수가 감내해야 했던 정신적 굴욕과 육체적 고통이 ‘한국 스포츠의 특수한 상황에서 있을 수도 있는 선수의 훈련 과정’이 아니라 경주시체육회 소속 노동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겪은 갈등·따돌림·폭행 등이며 이는 일반적 의미의 ‘직장내 괴롭힘’과 그 성격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최 선수의 극단적 선택은 업무와 깊은 관련이 있음이 제도적으로 확인됐다. 한마디로 선수가 직장의 고유한 업무로 인해 산재로 승인받은 첫 번째 사례가 되는 셈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체육 관련 분야에 노조가 없는 게 아니다. 한국 체육의 업무를 대부분 수행하는 대한체육회에도 노조가 있고 대한축구협회 같은 종목단체에도 노조가 있다. 스포츠계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신설된 스포츠윤리센터에도 노조가 있다. 그런데 정작 선수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확인하고 신장하는 결사체는 부족하다. 선수협회 정도의 자결단체가 있으나 보편권리의 확산에 기여하기보다는 일부 협회 회원의 이익에 종사하는 면도 없지 않다.

선수들의 결사체로는 한국경륜선수노동조합이 대표적이거니와 앞으로 더 많은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신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정확히 하고, 여러 제도적 안정성과 법적 권리를 확인하고 획득해 가는 과정은 결코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의 성적 향상과 스포츠문화의 발전에 더욱더 기여하는 일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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