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는 1년도 채 남지 않았고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새롭게 등판했다. 미중 간 경쟁과 갈등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 못지않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남북과 북미 간 대화는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와 대화로 북한에 접근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타임> 인터뷰에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마지막 도전을 시사했다.

갈림길에 선 한반도 운명 앞에서 민간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평화·통일운동단체들은 판문점회담일인 지난 4월27일 부산역을 출발해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인 7월27일 임진각에 도착하는 평화 대행진을 하고 있다. 모두의 염원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닿을 수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권영길(80·사진) ㈔평화철도 이사장을 만났다. 평화철도는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번 평화 대행진의 주축이기도 하다.

권 이사장에게는 ‘초대’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초대 언론노조·민주노총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냈다. 경남창원을 지역구에서 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평화철도는 2018년 3월18일 출범했다. 공교롭게도, 또는 운명적으로 평화철도 출범 전후 평창동계올림픽과 4·27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권 이사장에게 평화철도 활동과 한반도 평화, 현실정치, 노동문제, 내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들었다.

“기차 타고 금강산·백두산 가자는데 누가 반대할까요”

- 평화철도를 출범한 배경은 무엇인가.
“평화의 길이 통일의 길이고, 통일의 길이 평화의 길이다. 한반도 평화 만들기는 활동가나 구호 중심에서 벗어나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범국민적이고 실사구시적인 평화운동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뭘까. 바로 남북철도 연결이라고 판단했다.”

권 이사장은 우리 사회 평화통일운동에서 가장 큰 걸림돌을 ‘남남갈등’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남북철도 연결을 남남갈등을 벗어날 수 있는 의제로 봤다.

“기차 타고 금강산과 백두산에 가고, 평양 옥류관 냉면 먹으러 가자는데 누가 반대할까요. 실제 활동하다 보면 ‘나도 보수지만, 이것만큼은 환영한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남북철도 연결은 모두의 숙원사업입니다. 북쪽도 철도 현대화, 남북철도 연결을 숙원사업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북 모두 경제적으로 이익입니다. 사람들의 왕래만이 아닌 유럽대륙으로 화물을 실어나르면 물류비용이 지금의 반으로 줄어듭니다. 절감비용이 천문학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 복지정책이나 코로나19 손실보상을 거론할 때 재원문제를 지적한다.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하는 문제다.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미래 성장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남북경제공동체다. 남북철도 연결은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촉진제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구조적으로 동북아 안보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이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철도공동체다. 남북철도 연결은 러시아도 중국도 바란다. 남북도 바란다. 일본도 그렇다. 미국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1952년 탄생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처럼 동아시아철도공동체는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다.”

권 이사장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통일외교통상위원회(현 외교통일위원회)와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한반도 평화화 통일을 실천하는 의원모임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평화통일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 평화철도운동을 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있다면.
“2012년 18대를 끝으로 국회의원을 그만하자고 결심하면서, 국회 밖에서 평등평화통일운동을 새롭게 일으켜 보자고 생각했다.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역할도 의미 있지만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 초대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내고 국민과 노동자 사랑을 많이 받은 입장에서 평등평화통일운동의 작은 기틀을 마련하고 싶었다.”

“남북철도 연결이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촉진제 될 것”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16대 대선에 출마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TV토론회에서 유행시킨 말이다. 권 이사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가 의원생활을 마감한 뒤 가장 먼저 발족한 시민단체가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다.

“평등평화통일운동 중 ‘평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림살이가 나아졌냐는 것입니다. 교육·병원·주택·노후 걱정 없는 사회 만들기가 바로 복지국가 건설이고, 복지국가 건설은 평등의 실제 실천과제죠. 하지만 2014년 투병생활을 하느라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병이 호전되면서 활동을 재개하게 됐어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복지부문이 강조돼 오면서, 상대적으로 평화통일운동에 좀 더 집중하자고 생각했죠. 평화가 통일이고, 통일이 평화고, 동시에 평화가 밥이기 때문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남북철도 연결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요.”

- 평화철도가 출범한 뒤 한 달여 만에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났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렇다. 남북철도 연결운동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똑같구나. 이 운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힘이 됐다.”

- 하지만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평양공동선언은 하노이회담 불발 이후 사실상 이행이 멈춘 상태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제일 밑바닥에는 신뢰의 문제가 깔려 있다. 남북문제는 북미문제다. 특히 북미 간 신뢰가 더 깊은 문제다. 상호 불신하고 있다. 우리는 언뜻 북쪽이 약속을 저버려 미국이 북한을 불신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북쪽이 미국을 더 불신한다. 1994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1차 핵위기가 촉발했다. 당시 북미 간 전쟁으로 치달을 상황이었다. 그때 합의된 게 제네바 합의다. 북핵을 동결하는 대신 함경남도 신포에 경수로발전소를 2012년까지 건설하고, 금융제재를 6개월 이내에 풀어 주기로 합의했는데 이행되지 않았다. 더 큰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게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수석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갈루치의 말이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북미 상호불신, 미국 대북전략이 북미대화 교착 원인”

권 이사장은 미국의 대북전략도 북미대화 교착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꼽았다.

“미국의 대북협상 기본입장은 제재를 강화해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 기조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라가 ‘자주’를 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절대로 대북제재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에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라고 하고 있지만, 역으로 미국도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괄적으로 합의하고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한다고 여러 번 밝혔고, 합의했습니다. 싱가포르회담 약속대로 영변 핵시험장 폐쇄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철거가 이뤄졌습니다. 북쪽은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고 미국은 일방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하라고 하니, 하노이회담이 깨진 겁니다.”

- 복잡한 남북과 북미, 세계정세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의 세계패권 전략을 잘 봐야 한다. 트럼프는 톱다운, 바이든은 보텀업 방식을 쓴다. 하지만 미국의 북한문제는 세계 패권전략과 똑같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을 견제했고, 지금은 중국을 제압하는 것이다. 세계 패권전략에서 북한문제도 하나로 들어가 있다. 트럼프는 거칠게 중국을 압박했고, 바이든은 섬세하게 압박한다. 바이든 정부 들어 대중국 봉쇄는 더 심해졌다. 한국은 이를 잘 읽고 대응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제재에 동조하는 것이 이때까지의 입장이었다. 한미공조를 견지해 왔다. 하지만 여기에서 탈피해야 한다.”

- 평화철도와 평화·시민단체는 현재 부산역에서 임진각까지 평화 대행진을 하고 있다. 어떤 행사인가.
“남북철도 연결을 가로막는 미국에 대북제재 해제를 촉구하고, 남북 당국에는 판문점과 평양에서 합의한 대로 남북철도 연결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평화 대행진이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 평화·번영에 합의하면서 첫 번째 이행해야 할 사업으로 남북철도 연결이라고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 압력에 가로막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대북제재 사항이라고 한다. 하지만 남쪽 사람들이 자연스레 관광하자는 게 어떻게 대북제재 대상이냐는 것이다. 평화철도는 대북제재 해제와 남북철도 연결을 촉구하며 매주 목요일 서울역 앞에서 캠페인, 매주 화요일 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더 광범위하게 국민적 힘을 결집시키고, 우리 국민 힘으로 대북제제 해제를 이루도록, 여러 평화·시민단체들이 연대해서 90일간의 평화 대행진을 하게 됐다.”

- 평화 대행진 피날레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7월27일 임진각에서 ‘종전선언 대회’를 할 계획이다. 정부 간 종전선언을 아직도 못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강조하고 있지만 잘 안 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90일간의 평화 대행진, 임진각서 ‘종전선언 대회’

- 평화철도는 ‘1인 1만원, 10인 1침목 모으기운동’도 하고 있다.
“남북 간 철도에는 3개 축이 있다. 경원선(서울~철원~원산)과 금강산선(서울~철원~내금강), 경의선(서울~개성~평양~신의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원선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인구 10만의 철원역은 서울역에 버금가는 중요도를 갖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 경의선이 복원됐다. 남쪽은 도라산역이 종착역이다. 도라산에서 개성까지 연결해 개성공단 제품을 실어나르기 위한 화물열차가 운행됐다. 하지만 경원선과 금강산선은 끊겨 있다. 이를 잇기 위해 들어가는 침목비를 국민 성금으로 마련하자는 사업이다. 침목 1개에 1만원 정도 들어간다. 100만명을 목표로 한다.”

- 대북제재의 한계 속에서 임기 1년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되돌아보면, 묘하게도 남북 간 획기적 관계를 만드는 때가 임기 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 6·15 남북공동선언, 노무현 대통령 당시 10·4 남북정상선언이 그렇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하고, 오히려 금강산 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로 관계가 더 악화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는 1년 남았지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첫 번째는 대북제재 해제다. 한미공조 원칙하에서 미국과 대북 견제를 같이하고 있는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 미국 압력에서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 들어 외교적 실용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다른 대북전략을 쓰고 있다. 이럴 때 문재인 정부가 잘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북쪽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권 이사장은 우리 국민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 협상도 중요하지만, 한국 국민의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남쪽 국민은 북쪽에 대해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북한은 정치·경제체제 모든 게 다릅니다.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갈라진 지) 70년입니다. 얼마나 다를까요. 이 속에서 우리는 민족의 동질성,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고민해야 해요. 남쪽의 잣대로만 북쪽을 바라보고 해석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죠. (남북 모두 자기의 잣대로만 보면) 무력충돌과 전쟁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잘 봐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만드는 길은 북쪽이 경제발전이 돼야 하고, 남쪽은 불평등 구조가 해소돼야 합니다. 이를 맞추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 한미연합훈련은 북한문제에서 뜨거운 감자다.
“북쪽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접근이 성공할 거냐, 북한이 협상에 응할 거냐는 8월 한미연합훈련에 달려 있다고 한다. 문정인 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다 중단하라고 말한다. 한미연합훈련이 왜 중요한가. 어머어마한 핵무력을 갖고 세계를 제패할 힘을 가진 미국이 코앞에 있다. 미군 정찰기가 북한 상공을 날고 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어야 하나. 거기에 맞서 훈련을 북쪽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 훈련을 하려면 비행기를 띄우고 전차를 움직여야 하는데, 북한 경제력으로는 엄청나게 부담된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다. 이를 잘 읽고 역지사지로 북한을 봐야 한다.”

‘이준석 현상’이 문재인 정부 4년을 평가한다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북미관계 못지않게 국내 정치도 답답한 상황이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에서 불평등·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충격은 청년·여성·노동자·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

- 문재인 정부 4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준석 현상’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준석 현상은, 바로 문재인 정부 4년을 평가해 주고 있다. 이준석 현상은 시대 흐름이 아니다. 시대 흐름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오히려 사회개혁·사회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나. 시장경제 중심, 약육강식, 승자독식, 정글의 법칙만 적용되는 이런 나라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하지 않았다. 이준석 현상이 뭐냐. 신자유주의 원칙, 시장경제에 입각한 것이다. 불평등 사회를 더 심화한다.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은 있을 수 없다. 빈부격차가 교육격차를 만들고, 교육격차는 더 큰 빈부격차를 만든다. 한국 사회의 총체적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최대 공정은, 평등이다. 불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시대의 흐름이고, 시대의 흐름이어야 한다.

그런데 왜 승자독식과 능력주의를 내건 흐름과 이준석이 탄생했나. 한국 사회 100년을 지배한 그 세력과 당대표가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왜 이러나. 바로 문재인 정부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고, 하지도 않고, 못한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이준석 현상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4년을 평가하고 있다.”

- 집권여당이 국회에서 180석을 차지했지만 촛불이 원한 개혁은커녕 불공정·내로남불 비판 속에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왜 민심은 등을 돌렸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고 답을 찾으려면, 더불어민주당 성격 규정을 다시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정당인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을 열고 길을 넓히는 위대한 과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너무 폭넓게 수용하고 정착하는 오류를 범했다.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게 뭐였나.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사영화)였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구조조정이란 이름을 썼지만, 노동자를 대량으로 해고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부 정책기조로 삼고 이행한 것이 민주당 정부고, 오늘날 문재인 정부다.”

- 더불어민주당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나.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했다. 노 대통령 유고집 <진보의 미래>에서는 언제 분배가 있었냐고 지적한다. 우리 정부에서는 한 번도 분배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두들겨 맞고 주저앉았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완전히 빠져 있고 진보정책은 해 보지도 못했다는 대목이 계속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아니라 그보다 후퇴한 정책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의 태생적 한계, 기본입장의 문제다. 제대로 된 정통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정통 진보정당이 집권하고 진보시대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합리적 보수정당도 가능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이 제대로 설 때 합리적 보수정당이 탄생한다. 합리적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있을 때 한국정치가 발전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진보정당 성찰·반성하고 대선·지방선거 연대해야”

- 지난 총선과 재보선에서 진보정치는 무력했다.
“정통 진보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당들, 민주노총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분당과 분열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진보정당이 제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 한국정치가 이랬을까.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허약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을까. 촛불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고 이끌 정당이 없었다. 국민이 정치에 실망하고 불평등·양극화·빈부격차 사회를 바로잡기 어렵겠다고 여길 때 등장한 것이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안정적인 지지율을 받고 있었다. 지금 진보정당이 받는 지지율과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다. 한국 정치풍토에서는 기적이었다. 그런데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정파에 쫓겨 그렇게 만들었다. 국민이 차려 준 밥상을 걷어찼다.”

- 반성과 성찰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단기적 처방과 중장기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다. 지금 정의당과 진보당은 통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연대해야 한다.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단일후보를 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중장기적으로 진보정당을 통합해야 한다.”

노동정책 추진하다 주저앉기 반복, 사회대개혁으로 접근해야

-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전면에 내걸고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제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등 노동정책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노동시장 양극화, 비정규직 차별은 지속하고,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는 중대재해로 죽어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은 이행방법에서 처음부터 잘못이었다. 분절적으로 진행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했다가 반발이 심하니까 주저앉았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도 그렇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100년의 고질적인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풀려면 총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노동·정치·경제 등 모든 문제를 다루는 사회대개혁위원회를 추진했어야 했다. 이 속에서 노동시장·일자리·임금·복지를 위해 정부는, 노동자는, 정당은 무엇을 할 것인지 다뤘으면 했다. 사실 정권 초에 노동정책에 대한 자문을 내게 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노동문제로만 접근하지 말고 사회대개혁위원회로,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고, 문서로도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이것도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없어서 그렇다.”

-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시대에서 노동운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대전환 시대에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 생각이 같아야 한다. 정책을 같이 입안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구현이다. 대중조직이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고 이를 실천하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 소멸을 우려한다. 지금까지는 일자리 지키기였다. 이를 한 단계 넘어서 더 적극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 슬라보이 지제크 같은 학자는 코로나19 이후 시대에는 사회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자본에만 맡겨졌던 것을 국유화나 국영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코로나19 백신은 기업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이야기다. 국가가 책임지고 가야 한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규정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이 국가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활용해 진정한 진보정치, 노동자·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내년 대선서 완전한 정치·경제·사회 민주화 요구돼

- 내년엔 대선이라는 중대한 정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현실정치에서 본다면, 거대 양당에서 대선후보가 나올 텐데,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제가 독자적 진보정치세력으로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로 나왔을 때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샛강,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는 한강’이라고 했다. 노동자 중심 진보정당이 세력을 키워 집권해야 한국 사회 문제가 풀리는 것이라는 표현이었다. 내년 대선은, 보수시대의 정점이라고 본다. 만약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된다면, 노동유연화, 불평등 심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거의 궤를 같이할 것이다. 그때의 정치는 지금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그래서 보수의 정점이라고 한 것이다. 보수시대가 가면 그에 대한 반작용이 반드시 일어난다. 지금보다 더 극렬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거기에 더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 민주노총이나 새 정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코로나19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그것을 준비하고 이행하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진보정당 탄생이다.”

- 대선에서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 사회의 완전한 민주화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는 정치·경제·사회 민주화를 말한다. 지금까지는 정치 민주화, 선거 절차, 과정의 민주화만 보고 한국 사회가 민주화한 것처럼 말했다. 정치 민주화를 이루려면 정당정치가 뿌리내리고 정착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개혁만 생각하는데, 소득평등과 이를 넘어 자산평등이 될 때 이뤄진다. 이것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사회 민주화가 바로 노동중심 사회다. 이를 위한 진보정당이 탄생하는 길, 내년 대선 이후를 바라보는 길이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 것이냐보다, 누가 당선돼야 하느냐보다, 내 관점은 여기에 있다.”

권 이사장은 한때 많은 이들이 걱정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건강을 많이 회복한 그는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 앞으로 활동계획은.
“자가면역체계 이상에 따른 희귀병을 앓았다. 완치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안고 가려고 한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지만 활동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려고 한다.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 활동을 지금처럼 계속할 것이다.”

- 매일노동뉴스가 올해로 창립 29주년을 맞았다. 언론계·노동계 선배로서, 매일노동뉴스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지금 인쇄·방송 등 모든 매체가 모두 어렵다. 하물며 노동 분야에 특화한 매일노동뉴스는 얼마나 더 어렵겠나. 그럼에도 매일노동뉴스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 줬으면 한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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