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명선(54·사진)씨를 만난 곳은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있는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환경지회 사무실이었다. 세 평 남짓한 사무실 앞에 걸려 있는 ‘청소물품창고’라는 문패에 눈길이 갔다.

공항을 청소하는 일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다. 정씨는 2008년 공항에 발을 들여놨다. 인천공항 환경미화원들이 그가 일하던 식당에 우연히 들렀다. 마침 직장을 찾던 정명선씨에게 공항에 일자리가 있다는 얘기를 해 줬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어디 취업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후배 식당 일을 도와주고 있던 터였다. 엉겁결에 받아 든 작업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지 걱정도 됐다.

“처음에 입사했을 때는 좀 그런 게 있었어요. 이 나이에 청소 일을 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제는 청소 일을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인천국제공항 로고 새긴

명찰 달고 싶었을 뿐

그렇게 1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씨가 속한 용역업체는 세 번 바뀌었다. 용역업체가 달라질 때마다 동료들의 운명도 엇갈렸다. 공항공사와 용역업체 간 계약 인원이 줄어들 때면 마음을 졸여야 했다.

“몸이 불편하거나 목소리가 큰 사람은 고용이 승계되지 않는 거죠.”

그러는 동안 수십 장의 근로계약서가 쌓였다. 해마다 근로계약서를 새로 썼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용역업체는 마지 못해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었다.

“인천국제공항 로고가 새겨진 명찰을 달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파란색 명찰이 달린 작업복을 입고 일했거든요. 회사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고요.” 지난해 4월 인천공항운영서비스㈜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만 65세 정년이 보장됐다. 그토록 바라던 명찰도 달았다. 걱정이 없진 않다.

“공사가 저희를 직접고용한 게 아니고 자회사를 설립해서 고용했잖아요.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이 바뀌어 노동정책을 손보면 다시 용역업체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죠.”

가벼운 주머니 사정,
골병드는 주 6일 근무는 여전

정규직이 됐지만 주머니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정명선씨는 서류봉투에서 급여명세서 세 장을 주섬주섬 꺼내 내밀었다.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더해 보니 지난해 4월 급여는 235만원, 같은해 7월은 250만2천920원이었다. 용역업체 시절인 2019년 6월 급여 241만4천665원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자회사로 전환하고 처음에는 용역업체 시절보다 임금이 오히려 줄었어요. 그나마 노조가 세 달 동안 투쟁해서 회사에서 임금을 맞춰 준 거예요.”

인천공항 환경미화원들은 고정 3교대 방식으로 주 6일 근무한다. 오전 조는 아침 7시부터 낮 3시30분까지, 오후 조는 낮 1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야간 조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맡는다. 오후 조인 정씨는 저녁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7시간30분씩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 토요일 하루 쉰다. “주말이 너무 짧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만 더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죠.”

지난해 2월 인천국제공항공사 3기 노·사·전 협의회 합의서에는 “외부 전문기관 연구용역을 착수해 4조2교대 등 교대근무제 개선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명선씨는 연구용역을 거쳐 근무제가 개선되면 일주일에 이틀을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4조2교대를 도입하면 주 5일제로 바뀔 것으로 기대했어요. 근데 아직 연구용역조차 안 줬어요. 회사에 물어 보니 코로나19가 끝나면 용역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작업장으로 복귀하다 보니 ‘골병’이 드는 것 같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쓸고 닦고 같은 동작을 쉴 새 없이 반복한다. 분리수거용 집게를 쥘 때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신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변기를 닦을 때면 무릎이 시리다. 인천공항 환경미화원 대다수는 근골격계 질환에 취약한 중년 여성노동자다.

▲ 정명선씨 가슴팍 명찰에 '사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부당해고 등 싸울 일이 여전히 많아 요구안을 새긴 노조 선전물이 몸 앞뒤로 많이 달렸다. <정기훈 기자>
▲ 정명선씨 가슴팍 명찰에 '사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부당해고 등 싸울 일이 여전히 많아 요구안을 새긴 노조 선전물이 몸 앞뒤로 많이 달렸다. <정기훈 기자>

“자회사는 ‘큰 용역업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다 없애고 제로화 시대를 열겠다고 해서 기대가 컸어요. 공사 사장님도 올해 안에 전부 정규직 시켜 주겠다고 얘기해서 그럴 거라 믿었어요. 당연히 공사 직원이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회사 전환 이야기가 나왔어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자회사는 ‘큰 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어요.”

상대적으로 다수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공사 정규직 직원이 되면 정규직 노조는 단체교섭권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고용을 반대한다고 정명선씨는 생각한다. “공장이라 치면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사무실에서 타이핑을 하는 거고 우리가 하는 일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사를 박는 일이에요. 펜대 굴리는 일이랑 고객들과 직접 부딪치는 일은 다른 거예요.”

정명선씨가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월급을 올려 달라는 것도 아니다. “공사와 자회사 간 수의계약에 적용하는 낙찰률을 폐지해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임금수준을 유지하면서 주 5일제도 도입할 수 있어요. 사회적으로 일자리도 늘리고 현장 노동자들의 건강도 지킬 수 있는 거죠.”

“세계서비스 1위 공항, 그 일원이고 싶어”

정명선씨는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앞에 설레는 마음으로 섰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떻게 ‘높으신’ 분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오신다고 하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았어요. 공사 사장도 따라올 테니까. 환경미화원들이 단순히 청소만 하는 게 아니라 밀수한 금괴나 마약도 발견하고 화재도 신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죠.”

4년 전 그는 “더 이상 ‘우렁각시’가 아니라 당당한 공사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우렁각시는 사람이 없을 때 집을 청소합니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죠. 환경미화원들은 전국에 있는 모든 건물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환경미화원이 없으면 세상에 쓰레기가 넘쳐 날 겁니다.”

인천공항은 국제공항협의회의 세계공항서비스 평가에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인천공항이 자랑하는 세계 서비스 평가에는 청결 항목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환경미화원들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그런데 공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어요.”

4년이 지났다. 공항을 찾는 사람들에게 빗자루를 쥔 그의 모습이 보일까. 정명선씨는 “여전히 우렁각시처럼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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