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최근 <매일노동뉴스>에는 산업재해 처리 지연을 비판하고 반박하는 기고가 연이어 실었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가 공개적으로 던진 질문에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직접 해명하는 기고문을 보냈고, 또다시 노동계의 반론이 이어졌다. 금속노조는 문제 개선을 요구하며 근로복지공단 앞에 천막을 차린 상태다.

관련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산재와 관련한 논의를 풍부히 하기 위해 이번에는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에서 김종섭(54·사진) 근로복지공단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산재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노동자들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김종섭 위원장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노동자와 산재 적용범위가 확장한 만큼 공단의 인력과 예산·인프라를 확대하고 산재처리 프로세스를 간결하게 해야 한다. 노동계는 같은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당부한다.”

“산재처리 지연 비판 잘 알지만…
공정한 판단 위한 과정 불가피해“

- 산재처리 지연에 대한 비판이 뜨겁다.
“잘 알고 있다. 재해자와 노동계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억울한 측면도 있다. 현재 사고성 산재 처리가 크게 지연하는 일은 없다. 문제는 질병성 산재다. 질병성을 판정하는 기준은 엄격하다. 산재는 기본적으로 업무와의 연관성이 입증돼야 한다. 평소 생활습관 같은 것들이 질병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가운데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는 과정이 간단치 않다. 공단이 의학 전문가는 아니니 의학적 판단을 위한 특진도 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정하고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런 과정이 있다 보니 산재처리가 지연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공정성 강화를 위한 시스템이라 불가피하다.”

- 사고성 산재 판정 역시 지연된다는 비판도 많다.
“알고 있다. 꾸준히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 사업자 날인 삭제가 대표적이다. 사고성 재해는 그래도 질병성보다 인과성이 명확하다. 지연의 주된 원인은 의도적 은폐와 원·하청 문제다. 산재 건수가 많아지면 사업주의 보험요율에 반영되다 보니 기피하는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고 공단도 알고 있다. 그런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재해자 보호가 최우선이지만 조사 없이 승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공정한 산재 판정과 보상을 위해 신속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공단노동자가 이를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되레 공단노동자 입장에서는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더 낫다. 산재처리가 지연되면 항의성 민원이 빈발해 어려움이 커진다. 공단노동자도 이런 대목에서는 감정노동자다. 고충이 크다. 노조도 노동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행정을 쉽게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공단 인력·예산 확충 게걸음하면
취약노동자 보호 확대도 어려워져

- 구체적인 개선 요구가 있나.
“있다.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고 현재 6급체계를 3급체계로 개선하는 것이다. 3급 차장은 업무에 대한 경험과 의학적 판단도 갖추고 있어 신속한 업무가 가능하다. 현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사실은 3급 차장급 체계인데 판정위 운영지원부는 6급 체계다. 운영지원부 직원이 사건담당자가 되는데, 전문성을 더 높여야 한다. 개선이 필요하다. 질병판정위가 처리하는 산재 건수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질병성이라고 모두 질병판정위로 이첩하지 말고 경미한 건은 각 지사에서 판단해 산재처리를 신속히 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하면 재해자 보호가 소홀해질 우려도 있으므로 산재 불승인시에는 엄격한 협의체를 가동해 판단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 인력·예산 요구는 어떤 내용인가.
“공단도 공공기관이라 인력·예산 통제를 받는다. 알다시피 통제가 엄격하다. 공단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 주기보다 공급자인 정부 사정에 맞춰 배분한다. 이게 문제다. 공단에서 하는 사업은 공단이 하고 싶어서 하는 사업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에 필요한 사업이지 않나. 그런데 각종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공단의 인력과 예산은 확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약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단 사업이 확장했다. 체불임금 신속 지급 같은 보장사업도 그렇고 퇴직연금을 30명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사업도 인력과 예산 확대를 수반하지 않으면 일선 기관으로서 수행이 어려운 점들이 많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근거가 없다며 인력·예산 지원을 하지 않는다. 양대 노총이 요구해서 정책을 반영하고, 서비스 영역은 넓어지는데 공단은 그대로니 당연히 서비스가 늦어지고 이런저런 지연에 대한 뒷말이 나온다. 이걸 만회하려고 이사장을 비롯한 공단 임직원이 정부며 국회며 찾아다니는데 쉽지 않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범위가 확대하고, 이에 따라 보호 영역도 넓어졌다면 수행기관의 인력과 예산도 확대하는 게 맞다. 정부에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정부정책에 따라, 국정과제에 따라 시행한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증을 서 달라. 정부가 나서서 공단의 인력과 예산도 확충해야 한다고 밝혀 달라.”

“공단노동자 비판 안타까워
아파도 산재신청 못 하는 비애 있다”

- 통상 제도 도입에 유예기간을 둔다. 준비하는 데 효과가 없나.
“없다. 법을 만드는 걸 예로 들어보자. 각종 노동정책 관련 법안을 연말에 닥쳐서 처리한다. 정당 간 유불리에 따라 급물살을 탄다. 그러면 공단은 준비기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시행을 맞이한다. 법 시행일이 공포일과 달라도 그 기간 동안 사업 준비를 마치는 게 빠듯하다. 그러면서 예산도 안 준다. 하다못해 전산프로그램 개편 예산도 주지 않아서 ‘맨땅에 헤딩하듯’ 일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대국민 산재행정 지연과 불편으로 이어진다.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 산재처리기관 노동자로서 고충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노동계에도 당부하고 싶다. 공단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보여 달라. 노동계 일각에서는 공단노동자를 타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공단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발언이 늘었다. 안타깝다. 내 조직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상대 조직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공단노동자는 아파도 산재신청을 못 한다. 자기들끼리 해 먹는다고 비판을 받아서 그렇다. 이런 남모를 고충이 있다는 것을 헤아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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