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언젠가 열차표를 예매하려고 코레일앱을 켰더니 일부 열차편이 운행이 안된다는 공지가 떴다. 이유는 “불법파업”이라고 쓰여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공기업이 대국민 공지사항에서 ‘파업’이란 단어 앞에 당연한 듯 ‘불법’을 갖다 붙이다니. 아마도 면밀한 법리검토 끝에 불법으로 판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습관적으로 ‘불법’이란 수식어를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도박에 불법이 붙는 것처럼 ‘불법파업’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으니까.

파업이 불법인 시절도 있었다. 200년 전 산업혁명 시절이다. 그땐 어린이에게 밤새도록 일을 시켜도 불법이 아니고, 일하다 다친 사람은 쫓아내도 불법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항의 차원에서 다 같이 일을 거부하면 그게 불법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아니다. 파업은 헌법 33조에 명시된 권리다. 절차에 따라 파업을 하면 형사처벌도 받지 않고(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4조) 손해배상책임도 없다(노조법 3조). 심지어 사장이 파업한 일자리에 일용직을 데려다 쓰는 게 불법이다(노조법 43조). 왜 법은 파업을 불법에서 합법으로 바꿔 놓았을까.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곳에서 계약은 공정할 수 없다. 언제나 갑이 원하는 대로 을은 반쯤 노예계약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노동법이 만들어졌다. 노동법보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계약은 모조리 무효가 된다(근로기준법 15조). 하지만 노동법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는 이렇게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제정이 아니라 준수였다. 그때도 노동법은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권력관계를 없애기 위해 을인 노동자에게 무기를 쥐여줬다. 힘의 균형을 맞춰 노동법을 준수하게 하고, 근로계약도 공정하게 체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이 바로 그 무기다. 노조를 만들어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하고, 그렇게 회사를 괴롭혀서 얻은 대등한 협상력으로 노동법도 지키고 근로조건도 공정하게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노조를 MZ세대(현 20~30대)가 만들고 있다고 한다. 기존 노조가 파업·집회·현수막으로 싸웠다면 MZ세대는 소셜미디어로 소통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노조의 목적은 대등한 협상으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있고 협상은 본질적으로 힘싸움이다. 뭔가 줄 게 있거나 상대의 약점을 쥐고 있어야 ‘대등한’ 협상이 된다. 소셜미디어로는 피해사례를 공유하고 사장과 팀장을 비판하는 성토대회야 되겠지만 정작 협상에서 어떤 무기가 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직원 여론에 움직이는 건 투표로 뽑히는 정치인이지 주주가 내리꽂는 사장이 아니다. 사장이 알아서, 눈치껏, 신사적으로 협상에 임해 주면 좋겠지만 순진한 발상이다. 사장은 인건비 깎으라는 주주들 눈치 보기만도 바쁘다. 주주 이익에 부합하면 모를까 주주 이익에 반하는 직원 여론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다.

반면 파업·집회·현수막은 무기가 된다. 파업이야 말할 것도 없이 ‘합법적으로’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집회와 현수막도 생각보다 사장이 괴로워한다. 당장 자기 집 앞 골목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고 ‘합법적으로’ 집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단체행동이 합법이라 처벌도 안 되고 손해배상 청구도 못하고 심지어 헌법에 규정돼 있어 법 개정도 못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노동조합을 대등한 협상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근로조건 협상에 임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노동법도 준수해야 한다. 주주들도 그러라고 한다. 더 큰 손해가 나기 전에 합의하라고.

MZ세대 노조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헌법과 법률이 달리 쟁의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장과 대등한 협상을 할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여준 것이다. 손에 쥔 무기조차 쓰지 않으면서 무슨 협상을 한단 말인가. 혹시 회사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회사도 지속가능성까지 담보로 임금을 올려 준 전례는 없다.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사용자-노동자 간 갑을관계가 뒤집히는 경우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간신히 대등한 협상을 하게 된 것뿐이다. 본인도 회사에서 결코 사장보다 갑이 될 수는 없다는 것, 잘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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