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중대재해로 산재 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법과 제도를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소속 전문가들의 제안을 연속 게재한다.<편집자>

이영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이영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최근 정부와 안전기관·기업의 전방위적인 노력에도 사업장에서 철거건물 붕괴·추락·협착·화재폭발·중량물 낙하·지게차 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지역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업의 생산이나 경영활동이 위축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중대재해 발생은 기업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우리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을 바꿔 놓고 있다. 첨단과학기술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 같은 시대에 이러한 중대재해를 예방하지 못함은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눈으로 안전보건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최근 첨단기술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은 물론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 간 연결을 원만하게 하는 초연결 사회를 가져왔다. 인공지능(AI)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들어와 우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를 능가하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할 수도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활용은 산업현장에 더욱 빠르게 확산해 이제는 무인 공정·무인 수송·무인 작업 같은 무인 산업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중대재해는 인간이 위험기계기구 설비, 높은 에너지, 유해·위험한 물질 접촉과 같은 인간과 위험요인 간 접촉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려면 인간과 위험요인 간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 된다. 즉, 어떤 일을 하든 위험요인을 철저하게 파악해 제거하거나 대처하면 된다. 이러한 활동에 첨단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막지 못할 산업사고는 없을 것이다. 우리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유해위험요인도 첨단기술은 감지하고 파악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처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첨단기술은 안전보건에 아직 크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큰 사업장에서는 공정자동화, 산업용 로봇, 센서와 디지털 기술, 웨어러블 기술, 드론 기술, 또는 위험을 자동으로 진단·조치하는 기술 등을 활용해 안전보건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범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장에서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거나, 설령 이러한 기술이 개발됐다고 해도 비용 문제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용이 크게 들지 않으면서 효율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첨단기술도 있다. 이를테면 작업자에게 안전보건지식이나 기술을 즉석에서 알려 주는 인공지능 안전도우미(AI Assistant)가 있다. 헬멧에 유해 위험물질 감지 센서와 음성인식 웨어러블 스마트기기를 부착하면 유해가스가 있는지, 현장작업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위험요인이 있고, 보호구는 무엇을 착용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안전작업에 관한 사항을 컨트롤실 전문가와 채팅할 수 있는 컨트롤 시스템도 있다. 다만 저가의 간단한 안전기기는 어느 사업장이나 활용할 수 있겠으나, 고가의 첨단기술 안전시스템은 기업 스스로 개발해 활용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정부에서 개발해 사업장에 보급하는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첨단기술만을 활용하는 안전보건관리로는 산업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모든 산업활동의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예방은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구성원 모두가 자신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고 기업을 망가지게 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안전한 조직문화와 기업문화를 형성한 가운데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과학적인 안전관리를 실시해야 한다.

이제 세상은 안전보건 문제가 기업활동 영역과 별개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업에서 환경(E)과 사회(S)와의 관계, 기업의 지배구조(G)와 같은 비재무적인 영역을 생각하지 않고 기업을 경영할 수 없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ESG 경영의 사회적 영역 중 산업안전과 기업명성의 문제는 그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안전관리는 정부나 안전보건 전문기관의 지원과 기업의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중대재해 예방은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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