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카주라호는 아그라와 바라나시 중간쯤에 있는 작은 도시다. 인도 여행 전까지는 듣도 보도 못했던 그런 동네. 지금은 좀 다른 분위기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주라호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꽤 인기 있었던 곳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힌두교와 자이나교 사원이 잔뜩 몰려 있는 순례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인도 배낭여행 패키지를 운영하는 여행사들은 카주라호를 빼놓지 않고 방문지 목록에 넣기도 했다. 뭄바이에서 아잔타 석굴을 본 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야간기차로 밤새 달려야 한다. 침대칸 중에서 가장 싼 슬리퍼스 침대칸의 넘치는 오줌 냄새와 차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견뎌 내고 나서 도착한 곳은 ‘잔시’. 이곳에서 다시 차로 갈아타고 몇 시간을 더 가야 겨우 카주라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와야 하는 곳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와 곧장 힌두 사원으로 향한다.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짧은 길인데 가는 여정이 무척 피곤하다. 한국 여행자들이 워낙 많이 와서인지 관광지 주변 가게의 ‘삐끼’들이 심하게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서인지 우리말을 제법 하는 이들도 있다. 두세 명 되는 젊은 바람잡이들이 물건을 사라며 달라붙더니 좀체 떨어질 줄을 모른다. 됐다고 백만 번을 얘기해도 소용없다. 소귀에 경 읽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때 깨달았다. 버럭 신경질을 냈더니, 적반하장 손가락질과 투덜거림이 되돌아온다. 이렇게 지랄을 떨고 나서야 겨우 평화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정말 몇 분을 가지 못했다.

짧은 평화는 카주라호 힌두 사원 매표소에서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사원 입장권을 사려고 돈을 냈는데, 매표소 직원이 표만 주고 잔돈 줄 생각을 안 하지 뭔가. 왜 잔돈을 안 주냐고 물어도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흔들고만 있다. 또다시 열폭! 오늘만 두 번째 폭탄이 터진다. 매표소 직원과 내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구경만 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 이 싸움에 끼어들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잔돈을 못 받았다고 했더니, 모여든 사람들 중 일부가 매표소 직원에게 뭐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매표소 직원만큼이나 나도 당황했다. 이러다 큰 싸움 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살짝 ‘쫄고’ 있는데, 나대신 실랑이를 벌이던 남자가 직원에게서 받은 잔돈을 내게 건넨다. 헐~ 인도에 적응하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엉거주춤 돈을 받아들고는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카주라호의 힌두 사원은 사원 군락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그 숫자가 많다. 보존 상태는 제각각이라서 동네 곳곳을 다니다 보면 반쯤 무너져 내린 사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전까지 힌두 사원은 말레이시아의 인디아 거리에서 딱 한 번 본 적 있는데 무척 인상 깊었다. 기둥과 단을 타고 오르며 수많은 인물이 조각돼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오래된 나무 덩굴이 서로 얽히고설키어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곳 카주라호 사원들도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그 조각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한마디로 19금 에로틱 버전이랄까? 온갖 체위의 조각들이 겹겹이 쌓여 사원을 이루고 있으니, <카마수트라>가 따로 없다. 민망함 내지는 후끈함을 이겨 내고 사원을 한 바퀴 돌고 보니 뭔가 후끈해지는 느낌이다.

사원의 후끈함에서 벗어나려 근처 호수를 한 바퀴 돈다. 호숫가에 옷을 대충 벗어두고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 모습이 눈에 띈다. 아이들도 이방인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멱을 감다 호숫가로 나와 위를 바라본다. 카메라 렌즈를 잔뜩 당겨 여자아이 얼굴 하나를 담아 본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이 정말 크고 깊다. 마치 우주를 담고 있는 듯이 깊은 검푸른 빛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든다. 렌즈에서 눈을 떼고도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경험이었다. 인도 여행을 하는 동안 다른 곳에서도 몇 번이나 더 작은 우주 같은 아이들의 눈과 마주쳤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인도 아이들의 눈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사원 한 바퀴, 동네 한 바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지중해’란 이름의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식당을 보고는 2층의 ‘루프톱’에 자리를 잡았다. 높은 건물이 없는 동네라 2층에서만 봐도 주변이 시원하게 보였다. 건너편 숙소 뒤쪽의 아주 넓은 공터쪽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데, 자세히 보니 오일장 같은 시장이 선 모양이었다. 식당 주인 말로는 1주일에 한 번 열린다고 하니 7일장인 셈이다. 밥 먹고 나서 들러 봤지만 별 건 없었다. 수십 가지의 향신료와 시커먼 설탕 덩어리가 인상적이지만 먼지를 너무 마셔서인지 목이 컬컬했다. 카주라호 ‘TMI’ 정보 하나. 이곳에 ‘전라도’라는 이름의 한식집이 있는데, 주인은 인도 사람이다. 그러니 전라도 한 상을 생각하고 찾으면 실망이 클 수 있다. 라면이 그리울 때 한 끼 때우는 정도로 만족하기를 진심 권한다. 구글 지도상에는 아직도 영업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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