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를 조직한 전국택배노조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을 두고 보수언론이 총공세를 펼치는 듯하다. 동아일보·국민일보·문화일보·서울경제·매일경제·헤럴드경제·대한경제신문 등이 사설을 통해 중노위 판정을 맹비난했다. 중앙일간지 중에서는 경향신문·한겨레·한국일보를 제외하고는 전부 이번 판정을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의 비난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의 노동조건과 관계가 없는 제3자라는 주장과, 택배기사와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CJ대한통운의 단체교섭 응낙의무를 인정한 것이 기존 판례와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노동조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택배를 이용하는 우리의 경험과도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 택배시장 점유율의 50% 가까이를 차지하는 CJ대한통운은 핵심업무인 집화·배송을 담당하는 1만7천여명의 택배기사를 ‘위탁’, 즉 특수고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택배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실시간 배송추적과 배송담당기사의 인적 정보가 날아오고, CJ대한통운의 로고가 도색된 차량을 끌고 CJ대한통운의 유니폼을 입은 배송기사를 마주치면서, 그 배송기사가 CJ대한통운과 관계가 없는 개인사업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CJ대한통운은 전국의 택배기사에게 기사코드를 부여하고, 각 배송물품의 실시간 배송상태를 전산시스템으로 관리한다. 택배기사들이 지켜야 할 수칙을 매뉴얼로 정한 후 배송의 신속·정확성을 CS점수로 평가하고 있다. 또 배송이 지연되거나 고객의 요청이 있을 때 CJ대한통운의 콜센터가 직접 택배기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관리한다. 말하자면 CJ대한통운이 구축한 집화·물류터미널·배송이라는 전체 물류시스템 속에서 마치 컨베이어벨트에서의 노동과 같은 업무를 특수고용 택배기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중노위 판정의 핵심은 서브터미널에서 배송상품 인수시간 단축, 서브터미널에서의 작업환경 개선 등 CJ대한통운이 압도적인 지배력 내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에 관해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것이다. 택배터미널에서 배송물품들을 분류하는 것은 원래 운송기사의 업무가 아닌데도 그동안 기사에게 무급분류노동을 떠넘겨 왔다. 이로 인한 택배기사의 초장시간노동, 과로사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해 왔다. 지난 1월 택배종사자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 분류업무는 택배사의 책임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중노위 판정은 마땅히 CJ대한통운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 관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존의 법원 판례나 중노위 판정례와 상충되는 것이라는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억지에 불과하다. 이미 대법원은 2010년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여기서 대법원은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설시한 바 있다.

이후 수자원공사 사건, 홍익대 사건 등에서 법원은 지배력을 갖는 원청이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할 사용자라는 법리를 재확인했다. 대법원은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부 사건, 방송연기자노조 사건 등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무제공 조건을 지배하는 사업주와의 단체교섭권 보장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재계와 보수언론, 이들에 빌붙은 교수들의 진짜 속내는 이렇게 원청의 책임, 진짜 사장과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혐오와 공포인 듯하다. CJ대한통운의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이 (당연히 택배사의 업무인) 분류작업에 추가인력을 투입해서 그렇다는 주장, 이번 중노위 판정으로 인해 하청·간접고용을 활용하는 산업계 전반에서 노조 결성과 단체교섭 요구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처럼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는 제도에 대한 혐오가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번 논란에서 핵심적 질문은 이윤은 독점하면서 최소한의 법적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는 원청·대기업에 대해 노동조건을 대등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단체교섭권을 보장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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