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7일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심장질환과 뇌졸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공동으로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2016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74만5천명이 허혈성 심장질환과 뇌졸중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2000년 이후 29%나 늘어난 것이다. 지구적 수준에서 장시간 근무가 심장질환과 뇌졸중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최초의 연구인 이번 분석에서 ILO와 WHO는 주 55시간 이상 근무로 2016년 일년 동안 39만8천명이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34만7천명이 허혈성 심장질환 때문에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를 위해 수집된 각종 증거를 종합할 때 주 35-40시간 근무자와 비교해서 주 55시간 이상 근무자가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성은 17% 높고 뇌졸중으로 숨질 위험성은 35% 높았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장시간 근무로 인한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자는 42% 증가했고, 같은 기간 장시간 근무로 인한 뇌졸중 사망자는 19% 늘었다. 사망자의 72%는 남자로, 특히 주 55시간 이상 일하는 60~79세 노동자들이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세계 인구의 9%인 4억7천900만명이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들의 경우 일로 인해 장애를 갖거나 죽게 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ILO는 장시간 근무가 정신적·신체적·사회적으로 다양한 효과를 야기할 수 있기에 각국 정부가 ‘일의 시간’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코로나19 전염병으로 근무환경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근무시간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심리·사회적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재택근무 확산과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더해 임시직과 자유계약직 등 유동성이 큰 일자리가 급증하면서 근무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WHO는 일과 관련된 전체 질병 가운데 3분의 1이 장시간 근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장시간 근무를 직업병 최대의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WHO의 환경·기후변화·보건국장인 마리아 네이라 박사는 “주 55시간 이상 근무가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요인”이라면서 “모든 나라의 정부·사용자·노동자들이 장시간 근무가 조기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경고했다.

WHO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의무적인 연장근무를 금지하고 근무시간의 상한선을 규제하는 법규와 정책을 도입·집행하고 △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는 근무시간의 최대치를 제한하는 동시에 근무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조정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일하는 시간을 나눠 주 55시간 이상으로 근무시간이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ILO는 각국 정부가 일하는 시간에 대한 국제노동기준을 비준하고 관련 정책을 충실히 집행하는 동시에, 사회적 파트너인 노동자단체·사용자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근무시간 상한선을 설정하고 괜찮은 근무조건을 만들기 위한 일터의 환경을 증진하는 데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또한 ILO는 사용자가 노동자와 협력해 교대제·밤일·주말근무·유연근무제가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제거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재조직할 것을 권고했다.

1919년 창립총회에서 공업에서의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을 규정한 ‘일의 시간’ 1호 협약을 채택한 이래 ILO는 일하는 시간과 관련해 모두 22개의 협약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 15개 협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ILO의 입장이다. 대표적인 것은 1호 협약을 비롯해 14호 ‘공업에서의 주휴’ 협약(1921년), 30호 ‘상업과 사무실에서 일의 시간’ 협약(1930년), 47호 ‘주 40시간’ 협약(1935년), 106호 ‘상업 및 사무실에서의 주휴’ 협약(1957년), 132호 ‘유급휴일’ 협약(1970년), 171호 ‘밤일’ 협약(1990년), 175호 ‘단시간근무’ 협약(1994년) 등이다.

ILO는 회원국들이 일하는 시간에 관련된 협약들을 비준해 전 세계적으로 매년 14만3천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면서, 만약 모든 회원국들이 관련 협약들을 비준하게 된다면 매년 41만5천명의 생명을 추가로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하는 시간과 관련된 ILO 협약들 가운데 대한민국 정부가 비준한 것은 1935년 만들어진 ‘주 40시간’ 47호 협약 단 1개뿐이다. 이 협약은 이명박 정권 때인 2011년 11월7일 비준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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